초대형 조선업체의 출범이 가시권 안으로 들어왔다.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 KDB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인수·합병을 위한 본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현대중공업이 오는 5월 임시주총을 열어 후속 절차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임시주총에서 한국조선해양(가칭)을 설립하고 산하에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을 계열사로 두는 방안을 결정한다. 산은은 현대중공업에 넘기는 대우조선해양 지분 56%와 같은 가치의 한국조선해양 주식을 받게 된다.
시장 점유율 세계 1, 2위 조선업체의 합병을 앞두고 호재와 악재가 뒤섞여 있다. 조선업황의 회복세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가 지난 2월 수주 잔량을 분석한 결과 빅3인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이 각각 금·은·동메달을 차지했다. 올 들어 현대중공업의 초기 수주가 주춤한 사이에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잇따라 수주에 성공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 영업이익 1조248억원을 기록한 것도 좋은 재료다. 이 회사의 흑자가 부채 감소로 이어지면 막대한 대우조선해양의 대출금 등을 갚아야 하는 현대중공업은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굳게 닫혔던 취업문도 서서히 열리고 있다. 빅3뿐 아니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이 신입·경력사원을 채용했거나 올해 하반기까지 채용할 예정이다. 삼성중공업은 3년, 대우조선해양은 4년 만에 지난해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를 실시했다. 조선업의 고용시장에 봄바람이 불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걸림돌도 만만치 않다. 두 기업 노조가 인수·합병에 반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51.58%,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92.16%의 찬성률로 파업을 가결했다. 두 노조의 파업 의지는 사뭇 다르지만 구조조정에 대한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두려움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두 기업 노조의 고용 불안이 과장된 것은 아니다. 초대형 유조선(VLCC)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을 주로 수주하는 두 기업의 사업 분야가 겹치기 때문이다. 노조는 경영효율을 추구하는 사측이 구조조정을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1+1’은 2가 아니라 2 미만이 될 것을 우려하는 노조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난 20년간 산은의 관리를 받으며 어마어마한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대우조선해양이 마냥 산은 울타리에 잔류할 수는 없다. 산은의 관리·감독 소홀과 노사 야합이 부실·방만 경영을 초래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 혈세를 회수하고 번듯한 민간기업으로 재탄생하려면 조선업황이 회복기에 접어든 지금이 인수·합병의 최적기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노조의 고용 불안에 대해 “두 기업 모두 구조조정을 마무리했고 상당한 수주 물량을 확보했기 때문에 인위적 구조조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영석·가삼현 현대중공업 공동대표도 “대우조선해양 인수 목적은 조선업을 살리기 위한 것이며, 한쪽을 희생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사측은 노조의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노조는 조선업계의 상생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사측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각국 공정거래 당국의 기업결합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것도 어려운 숙제다. 유럽연합 미국 중국 일본은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려 할 것이다. 이 회장이 “해외 공정거래 당국의 기업결합 불승인이 여전한 리스크지만 승인 확률이 절반보다 크다”고 말했지만 낙관하기는 이르다. 무슨 근거로 이런 예상을 했는지 모르지만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 만전을 기해야 한다. 경쟁국의 기업결합 승인을 받기 위해 조선업계, 정부, 산은이 합심해야 할 때다.
염성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