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의 기적] 물도 귀한 마을에 들어온 컴퓨터… 아이들에게 꿈이 생겼다

입력 2019-03-27 00:03
정용달(왼쪽) 강학근 목사가 지난달 20일 에스와티니 솜퉁고 라부미사초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제 이름은 시만가리소 다큐제(13)입니다. 초등학교 7학년이고 여동생 5명과 형 한 명과 함께 살아요. 제 꿈은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것입니다. 에스와티니로 관광객을 많이 데려오고 싶습니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강학근(서문로교회·63) 정용달(성동교회·54) 목사와 월드비전(회장 양호승)은 에스와티니 솜퉁고 지구 라부미사초등학교의 전산실을 찾았다. 다큐제 등 학생 10여명이 컴퓨터 앞에 앉아 워드프로세서로 자기소개를 적고 있었다. 지난해 월드비전의 후원으로 학교에 컴퓨터가 생기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컴퓨터 수업이 됐다.

아이들은 배구선수 교사 의사 경찰 등 다양한 꿈을 컴퓨터로 적어갔다. 텔레비전도 접하기 힘든 이들이 세상에 다양한 직업이 있음을 컴퓨터로 배웠다. 중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는 10명 중 2명 정도. 가정의 생계를 위해 학교 대신 사탕수수 농장으로 향했던 이들에게는 큰 변화가 시작된 셈이다.

에스와티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둘러싸인 국가로 면적이 한반도의 12분의 1에 불과하다. 지난해까지 스와질란드라고 불린 이 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의 40%가 코카콜라 원액생산 공장에서 만들어질 정도로 가난하다. 1968년까지 영국령이었기에 국민 대다수가 영어를 사용할 줄 알며 다섯 명 중 세 명은 기독교를 믿는다. 하지만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가져갈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하다.

정 목사는 학교 조리실에 놓여있는 성경을 한동안 쳐다봤다. 정 목사는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조선 땅에 처음 왔을 때 암담하다고 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며 “우리는 이 땅에 작은 도움을 주지만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이 지역을 끊임없이 두드릴 때 지역을 사랑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강 목사는 아이들에게서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 듯했다. 칠판에 쓰인 영어단어를 학생처럼 소리 내어 읽는 강 목사 주변으로 아이들이 웃으며 모여들었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이곳에 희망이 있음을 느꼈다”며 “감사함을 표현하는 데 서툴지 않은 이들이 훗날 다른 이에게 도움을 베풀 사람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일행은 학생들의 가정도 방문했다. 진흙집에서 사는 논새 몽로(10·여)는 아빠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 봉길 디미니(25·여)씨는 전기공학을 배우고 싶었지만 미혼모가 됐다. 아이의 아빠는 남아공으로 떠났는데 직업도 모른다고 했다. 그들의 가정을 붙들고 있는 건 신앙이었다. 디미니씨는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직업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며 “아이만큼은 밝은 미래가 있는 성공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물과 전기 같은 당연한 것들이 이들에겐 귀하다. 이튿날 만난 센킬레 니사(73·여)씨는 전기와 수도가 연결 안 된 산기슭 속에서 손주 5명을 키우고 있었다. 슬레이트를 이어 집 벽을 세웠고 흙이 드러난 바닥에서 생활하고 있다. 자식들은 아이를 맡긴 채 모두 그를 떠났다. 니사씨가 키우고 있는 니사 산지수(10)는 “경찰이 꿈”이라고 소개했다. 그 꿈을 위해 새벽 5시 일어나 2시간을 걸어 학교에 다닌다. 가장 갖고 싶은 것을 묻자 “먹을 것”이라고 답했다.

월드비전은 솜퉁고 지구 아이들과의 결연을 지난해부터 강화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맺고 있는 결연 아동 수는 2500여명. 우물과 화장실을 만들어 그들의 건강을 돌보고 학교를 지원해 영어와 컴퓨터 등을 가르치고 있다. 도귀화 월드비전 대구경북지역본부장은 “월드비전의 목표는 이들로부터 ‘잘 가요 월드비전’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라며 “월드비전은 이 지역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한국 후원자들의 사랑을 연결해주는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겠다”고 말했다.


“수도 덕분에 건강이 훨씬 좋아졌어요”

에스와티니 음수바니 지구는 루봄보산을 넘으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있는 국경지대다. 고지대여서 물이 귀하기에 많은 가정이 물을 길으러 월드비전에서 만든 수도 시설을 찾는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이곳을 찾았을 때도 한 젊은 여성이 커다란 물통을 머리 위에 인 채 걷고 있었다. 수돗물을 집에 가져가기 위해 걷는 거리는 40분 정도. 노새가 있는 집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부모가 노환으로 잘 움직일 수 없는 가정은 미취학 어린이가 물동이를 이고 걸어야만 한다.

이날 오전 수돗가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대부분 여성이었고 수레를 끌고 아버지와 함께 온 아이도 있었다. 수도 시설은 높은 산에 물탱크를 만들고 수도관을 사람들이 사는 지역까지 연결해 만들었다. 75가정이 물을 길으러 이곳을 찾는다.

이 지역 사람들은 농사를 짓거나 목축업을 한다. 가축을 키우느라 개울물이 오염돼 질병 전염의 우려가 컸다. 친구와 함께 물을 구하러 온 미예니 사킬리(24·여)씨는 “이 물로 음식도 만들고 목욕도 할 예정”이라며 “수도 시설이 생기기 전에는 오염된 개울물을 써야 했다”고 말했다. 20ℓ 물통 가득히 물을 받은 사킬리씨는 해맑게 웃으며 산길을 올라 집으로 돌아갔다. 강학근(서문로교회) 정용달(성동교회) 목사도 물을 긷는 이들의 곁에서 물통을 들어주고 산길을 함께 걸었다.

음수바니에서 태어난 돌리 들라미니(55·여)씨는 수도 시설이 생긴 2년 전부터 이곳을 관리하고 있다. 그는 “개울가 물을 사용할 때보다 사람들의 건강이 훨씬 좋아졌다”며 “우물은 사용 기한이 짧지만 수도는 그런 염려가 없어 참 편하다”고 말했다.

솜퉁고(에스와티니)=글·사진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