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수사 환경부 넘어서자… 靑, ‘개혁에 반발하나’ 부글부글

입력 2019-03-26 04:04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5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최선을 다해 설명드리고 재판부 판단을 구하겠다”고 말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청와대와 검찰의 불안한 동거가 점차 파국으로 달려가고 있다. 검찰 조직의 권한 분산을 꾀하는 청와대와 이에 반발하는 검찰 조직이 환경부의 찍어내기 인사 의혹을 두고 맞부딪치고 있다. 검찰 수사는 환경부를 넘어 청와대를 겨냥하고 있고, 청와대는 정당한 인사·감찰권이었다고 반박하며 내심 불쾌함을 표출하고 있다.

청·검 갈등은 애초부터 예견됐던 수순이다. 전병헌 전 정무수석으로 시작된 검찰의 청와대 인사 수사는 점차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청와대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세워 검찰 개혁의 고삐를 쥐고 있다. 노무현정부에서부터 시작된 청와대의 뿌리 깊은 검찰 불신, 자체 개혁으로 조직을 재정비하겠다는 검찰의 반발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청와대는 25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을 지켜보자”며 사흘째 침묵을 지켰다. 청와대가 이 사건을 두고 입장을 낸 건 지난 22일이 마지막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장관의 인사권과 감찰권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법원의 판단을 지켜보겠다”며 “과거 정부의 사례와 비교해 균형 있는 결정이 내려지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이 지칭한 과거 정부의 사례는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을 의미한다. 두 정부 모두 당·청이 공개적으로 공공기관장의 사퇴를 종용했다. 찍어내기 감찰도 공공연하게 이뤄졌고, 일괄사퇴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청와대가 겉으로는 침묵하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는 이유다. 윤영찬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이날 페이스북에 과거 정부의 행태를 언급하며 “불법도 그런 불법이 없었다. 한마디로 무법천지였다”며 “검찰은 불법을 눈감았고 언론은 이를 이해했다”고 썼다. 이어 경찰청장, 감사원장, KBS 사장 등이 “국정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교체된 점을 거론하며 “그때는 왜 검찰이 그냥 넘어갔느냐. 공공기관장의 임면권은 대통령과 장관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환경부 수사를 바라보는 청와대의 기본적 시각은 검찰이 과거 정부 때와는 달리 현 정권을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집권 2년간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 상당수가 “나는 원래 진보였다”거나 “이번 정부에서 할 소임이 남았다”며 버티는 데 불만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상당수가 임기를 마치도록 했고, 아주 일부만 교체했는데도 검찰이 전면적인 수사에 나서자 응어리가 커지는 모습이다.

청와대를 향한 검찰의 칼날이 검찰 개혁과도 연계돼 있다는 의심도 갖고 있다. 검찰의 청와대 인사 수사는 정권 초 전병헌 전 수석을 시작으로 드루킹 사건에 연루된 송인배 전 정무비서관으로 확대됐다. 이어 이번엔 청와대 핵심 조직인 인사수석실을 정조준하고 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마냥 사법부 결정만을 기다리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 된 셈이다. 게다가 김경수 경남지사 구속에서 보듯 최근 사법부 내부 기류도 경색되고 있어 부담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 불개입을 선언한 상황에서 수사를 견제할 수단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청와대는 대신 검찰이 부당한 수사를 펼칠 경우 적극적으로 인사·감찰권을 행사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검찰 개혁 작업도 속도전에 돌입할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권력기관 개혁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한다”며 “특권층의 불법적 행위와 외압에 의한 부실 수사, 권력의 비호 은폐 의혹 사건에 대한 국민 분노가 매우 높다. 공수처 설치의 시급성이 다시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버닝썬 클럽 사태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폭행 의혹을 계기로 다시 공수처 설치 드라이브를 건 것이다.

문제는 환경부 의혹 수사가 끝나더라도 언제든지 유사 사안이 재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논공행상 관습이 철폐되지 않는 이상 다른 부처에서도 얼마든지 관련 사례가 불거질 수 있다. 검찰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고위공무원의 직권남용 등에 대해 과거와는 다른 기준을 요구받고 있다. 따라서 청와대가 “우리는 덜 했다”고 주장하기보다 낙하산 인사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