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벚꽃놀이는 노동, 파와하라” 日 젊은 직원들의 반란

입력 2019-03-26 04:04

일본인의 벚꽃 사랑은 유별나다. 초봄이 되면 TV에선 벚꽃 개화시기를 알려주는 ‘벚꽃 전선’ 뉴스를 연일 내보낸다. 2월 말부터 열도를 북상하는 벚꽃 개화에 맞춰 열리는 벚꽃놀이는 일본의 연중행사다.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벚꽃놀이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기업체의 신입 직원들이 자리를 잡아놓는 게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최근 기업의 벚꽃놀이가 전근대적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직원들에게 참여를 강요하거나 직원들이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밤샘을 하고 휴가를 쓰는 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일본 NHK방송과 잡지 주간 SPA 등은 최근 벚꽃놀이에 대한 젊은 직원들의 반발과 그에 따른 변화상을 포착했다. 우선 젊은 직원들은 벚꽃놀이 참여와 자리 맡기를 근무의 연장으로 봤다. 주간 SPA가 익명으로 게재한 회사원들의 반응을 보면 “야외에서 추위에 떨었던 기억밖에 없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야외 벚꽃놀이는 지옥의 연회다” “자리를 잡기 위해 밤을 새웠더니 감기에 걸렸다” “술 구입, 설거지, 쓰레기 처리 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 등 불만 일색이었다. 회사원들은 강제적인 벚꽃놀이 참여가 잔업에 해당하며 신입 직원이 휴가를 내고 자리를 맡는 관행은 노동법 위반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중년 이상의 회사 간부들이 벚꽃놀이를 직원들의 단합을 위한 ‘즐거운 회식’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

일본 변호사업계는 벚꽃놀이에 강제로 참가한 경우, 업무시간에 벚꽃놀이가 열린 경우, 회사가 벚꽃놀이 비용을 분담하는 경우는 업무로 판단하며 법정 노동시간을 넘은 부분에 대해선 잔업비도 지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벚꽃놀이가 원인이 된 질병이나 상처는 산업재해가 된다.

벚꽃놀이가 각종 사건사고의 온상이라는 지적도 많다. 상사들이 지위를 이용해 후배를 괴롭히는 것을 뜻하는 ‘파와하라’(Power와 Harassment의 일본식 표현으로, 상사가 지위를 이용해 횡포를 하는 것)가 극성을 부리기 때문이다. 상사들은 이 자리에서 부하 직원들에게 술을 억지로 먹이거나 이상한 게임으로 벌칙을 주고 여직원을 성희롱 또는 성추행하기도 한다. 젊은 직원들이 거부 의사를 드러내도 상사는 “벚꽃놀이에 거절은 없다”며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젊은 직원들은 참기만 하던 과거와 달리 사표를 쓴다는 각오를 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주간 SPA 등은 전했다. 벚꽃놀이 실태와 상사의 부적절한 행동을 아예 사장에게 직접 보고한 뒤 강제 음주가 중단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일본 기업들이 구인난을 겪으면서 신입 직원의 사직에 예민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노동법 개정 등을 통해 일본에서 노동 문제와 상사의 갑질 등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것이 배경으로 풀이된다. 야외 벚꽃놀이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최근 수년 새 일본에선 실내 벚꽃놀이 등 변형된 놀이가 등장했다. 일부 업체는 회사 건물 내부 공간을 벚꽃으로 장식하거나 영상을 통해 직원들에게 벚꽃놀이를 즐기도록 했다. 날씨에 관계 없이 장소 쟁탈전을 벌이지 않고 편하게 시간을 보내라는 취지로, 직원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NHK는 전했다. 실내 벚꽃놀이 전문업체는 올해 예약이 3배가량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