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사진)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의혹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재판 첫날부터 검찰 공소장에 제동을 걸었다.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에 문제가 있다며 공소장 변경을 요구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25일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피고인 출석의 의무가 없는 준비기일이어서 이들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을 향해 ‘공소장 일본주의(一本主義)’를 위배했다고 언급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란 재판부가 재판 전부터 피고인이 유죄라는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오로지 범죄사실만 기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기타 사실이나 서류를 첨부해서는 안 된다.
재판부는 ‘청와대 의중에 맞게 대법원이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 정지 사건을 무리하게 뒤집으려했다’는 부분을 예시로 들었다. 2015년 7월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 지시에 따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A심의관 등에게 ‘사법부 정부 협력 사례’ 등 전교조 관련 문건을 작성, 보고하도록 했다는 게 공소장 내용이다. 공소장의 ‘범죄사실 소결론’에는 ‘A심의관에게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검토’ 보고서를 작성하게 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기재돼 있다.
재판부는 “(소결론에 기재된) A심의관이 작성한 보고서는 2014년 12월 3일”이라며 “박병대 지시로 임종헌이 전교조 사건을 사법부 협력 사례로 보고 받은 것은 한참 뒤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심의관으로 하여금 보고서를 작성하게 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것으로 공소사실이 마무리되는 것”이라며 “공소사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결과와 영향들을 계속해서 기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공소장 가운데 ‘전교조 재항고 사건의 주심 대법관이었던 고영한이 이 사건 처리를 지연하고 있던 중에’ 부분도 문제삼았다. 재판부는 “고영한 피고인이 기소된 것이 없는데도 행위 내용을 기재했다”며 “기소되지 않은 피고인의 행위를 이렇게 기재하는 것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사건은 6년간 양 전 대법원장의 여러 동기와 배경에 의해 이뤄진 범행이고 주된 죄명은 직권남용”이라며 “정확히 설명하지 않으면 왜 범죄가 되는지 알기 어려워 전후 사정과 동기는 무엇인지 상세히 서술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수정 여부를 검토한 뒤 재판부에 의견을 밝힐 예정이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