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22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전격 철수하면서 남북 상시 대화채널이 일단 막히게 됐다. 이산가족 화상상봉 등 인도적 지원 협력 및 경제협력, 군사합의 이행 등 남북 교류 전반에 제동이 걸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북한의 연락사무소 철수 조치가 취해지기 전만 해도 이산가족 화상상봉 관련 협의를 조만간 북측에 제안할 계획이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지난 8일 이산가족 화상상봉과 관련, 제재 면제를 승인했다. 화상상봉을 위한 물자·장비의 대북 반출이 가능해지면서 관련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연락사무소 철수로 화상상봉 문제는 협의조차 어렵게 돼 당분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지난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북측의 연락사무소 철수 관련 브리핑에서 “현실적으로 북측 인원들이 철수를 했기 때문에 이산가족 화상상봉 등 이런 부분들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를 하기가 조금 어려워진 건 사실”이라며 “(화상상봉 등이) 너무 늦어지지 않고 협의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착공식까지 치렀던 철도·도로 협력과 고려 왕궁터인 개성 만월대 발굴 재개 등도 남북 간 상시 대화채널이 차단되면서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 경협은 거론조차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통일부는 24일 천 차관 주재로 실·국장 10여명이 참석하는 비공개 점검회의를 열었다. 전날에 이어 열린 회의에선 현재 연락사무소에서 비상근무 중인 우리 측 인력 25명의 신변안전 문제 및 북측 동향을 점검하면서 향후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연락사무소에서 근무할 남측 인원들은 북측과의 협의가 마무리되면서 25일에도 정상적으로 출경할 예정이다.
통일부는 지난해 9월 연락사무소 개소 이후 지난 21일까지 남북 간 연락·협의가 총 489회 진행됐다고 밝혔다. 또 지난달 말까지 연락사무소 개소·운영을 위해 집행된 금액은 개·보수 비용을 포함해 총 105억원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달라진 태도를 감안하면 9·19 군사합의 이행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북한은 최근 우리 군 당국이 군 통신선을 통해 군사회담을 제의했지만 ‘상부에 보고하고 답을 주겠다’고 한 뒤 묵묵부답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인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달 중 남북 군사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지만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북한은 지난 6일 남측 유해발굴단 구성을 완료했다는 우리 군 당국 통보에도 답신하지 않고 있다. 다음 달 시작하기로 합의한 남북 공동유해발굴 사업뿐 아니라 남북 민간선박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 올해 예정된 9·19 군사합의 이행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방문객의 남북 구역 자유왕래 방안도 언제 이뤄질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해 평화수역 조성을 포함한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를 논의할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도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들어 이뤄진 남북 군 당국 실무자 간 대면접촉은 지난 1월 30일 한강하구 이용을 위해 제작한 해도(海圖)를 북측에 전달한 것뿐이었다. 남북 군사회담은 지난해 10월 26일 9·19 군사합의 이행 상황과 향후 과제를 논의하기 위한 장성급 회담을 끝으로 열리지 않고 있다. 남과 북, 유엔군사령부 3자 협의체 회의도 JSA 감시장비 배치 등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12~13일 열린 실무회의가 마지막이었다.
다만 북측은 우리 군 당국과의 연락 채널을 차단하지는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측은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 선로 점검을 위한 통화에 정상적으로 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헌 김경택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