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드라마에는 간(肝) 얘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지난 19일 열린 KBS 새 주말극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제작발표회에서 김종창 감독은 ‘막장’ 논란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출생의 비밀, 병처럼 한국 드라마가 반복적으로 사용한 소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MSG(인공조미료)가 많은 드라마가 아니다”고 했다. 전작 ‘하나뿐인 내편’과 같은 채널 미니시리즈 ‘왜그래 풍상씨’에서 간이식과 간암 등이 연달아 나오며 자극적인 전개에만 골몰한다는 눈총을 받았던 터다.
KBS 간판 브랜드인 주말극은 대부분 30~40%(닐슨코리아) 시청률을 거뜬히 기록하며 불패 신화를 이어왔다. ‘가족’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바탕으로 주변에 쉬이 있을 법한 일들을 쉽고 재밌게 풀어낸다는 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전작은 우연성 짙은 신파라는 지적이 일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가족극은 다양한 인물을 통해 감정이입과 해소를 유도하는 건데, ‘하나뿐인 내편’은 인물들과 상황을 극한으로 몰고 가 과몰입을 하게 했다”며 “시청자들이 답답한 마음에 욕을 하면서 봤던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막장’은 대개 득보다 실이 크다. 시청률은 높을지 모르나 공감은커녕 실망을 안기기 마련이다. 채널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은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현실적 고민을 담아낸 서사와 캐릭터를 들고 나왔다. 김 감독은 “풍자와 해학으로 현실적인 문제들을 담아보고자 한다. 또 대안을 함께 고민하는 장을 마련해 보고 싶다”고 소개했다.
극은 남성 중심 가족구조 안에서 조명되기 어려웠던 ‘여성들’인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23일 방송된 1회는 끈끈하게 얽힌 네 모녀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첫 장면은 특히 상징적이다. 박선자(김해숙)의 큰딸 강미선(유선)은 남편의 출근과 딸의 등원을 함께 챙기며 전쟁 같은 아침을 치른다. 은행원인 그는 가사·육아·일의 삼중고에 시달리는 ‘워킹맘’의 전형이다. 선자는 황혼 육아 당사자로 홀로 남겨질 손녀를 돌보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부리나케 미선의 집으로 향한다.
이외에도 엘리트 회사원 둘째 딸 강미리(김소연)와 파트타임을 전전하는 막내딸 강미혜(김하경) 등 현실성 있는 인물 군상을 둬 향후 공감의 여지를 폭넓게 마련해뒀다. 앞으로 각기 다른 상황에 부닥친 딸들이 엄마와 여러 결로 갈등하고 화해하며 더 끈끈한 가족으로 성장해가는 내용이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시청자들도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에 어느 정도 공명하는 분위기다. 첫 회부터 26.6%라는 비교적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 최종회가 50%에 육박했던 전작이 21% 정도로 출발했던 것과 견줘보면 성공적이다. ‘막장’ 논란에 곧잘 오르내리는 KBS 주말극이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시청률에 안주하는 것을 넘어 깊은 메시지를 담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 평론가는 “그간의 주말극에선 달라진 현실의 가족관계를 조명하려는 모습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작품은 전작보다 현실적인 고민이 담겨있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이 중요하다. 전형적이고 자극적인 전개보다 사회적 의미를 함께 녹여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