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서 힘 못쓴 국민연금… 행동주의 펀드도 ‘찻잔 속 태풍’

입력 2019-03-25 04:01

올해 주주총회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려던 국민연금의 시도가 현재까지는 ‘빈손’에 그치고 있다. 주주 권익 강화를 명분으로 목소리를 높이려던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도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는 분위기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행동주의 펀드 등이 반대한 기업들의 주주총회 안건은 대부분 통과됐다. 국민연금이 표 대결에서 ‘완패’했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총에서도 회사 측의 안건이 모두 통과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김동중 경영자원혁신센터장 사내이사 재선임, 정석구 권순조 사외이사 재선임 등의 안건이 모두 통과됐다고 밝혔다. 앞서 국민연금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총에 상정된 안건에 모두 반대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 혐의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삼성물산, 삼성전자 등 계열사가 주식의 75%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3.09%의 지분만 보유한 국민연금이 표 대결에서 이기기는 불가능했다.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는 29일 예정된 한진칼 주총에 안건을 상정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법원이 “주주제안을 하려면 회사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하는 상법상 요건을 못 갖췄다”며 KCGI가 주주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계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기업들이 투기적 펀드자본의 부당한 요구에 시달리지 않도록 경영권 방어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재계 관계자는 “대주주 지분이 충분하지 못한 회사의 경우 앞으로 상황에 따라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재계는 오는 27일 대한항공 주총과 29일 한진칼 주총을 주목하고 있다. 대한항공 주총에서는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이 안건으로 올라와 있다. 조 회장 일가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이 거세고, 조 회장도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이 부정적 결론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주식 10.57%를 보유한 2대 주주다.

한진칼 주총의 경우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석태수 사내이사 재선임 건에 찬성하면서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KCGS는 국민연금이 제안한 ‘이사 자격 강화’ 안건에는 찬성했다. 이 안건이 통과되면 한진칼 사내이사인 조 회장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채택 후 처음 맞는 이번 주총에서 경영진 견제에만 치우치지 말고 중장기적 기업·주주가치 제고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반대 의사를 표명한 삼성바이오로직스나 향후 반대가 예상되는 대한항공의 경영진 선임과 관련해 만약 재판에서 경영진 혐의가 무죄로 확정되면 해당 기업 및 주주·채권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신중한 의사결정을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