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호텔’ 자기연민의 끝… 홍상수 월드에 갇힌 김민희 [리뷰]

입력 2019-03-25 00:05 수정 2019-03-25 18:53
홍상수 감독 신작 ‘강변호텔’의 한 장면. 영화는 제71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기주봉)과 제56회 히혼 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최우수각본상 남우주연상(기주봉)을 수상했다. 영화제작전원사 제공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매번 비범한 구석이 있었다. 일상적 말들에 무심히 담긴 철학적 사유 때문일 테다. 그에게 천재 감독이라는 찬사가 따라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계속된 동어반복은 그의 작품을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만들었다. 신작 ‘강변호텔’ 역시 그렇다.

영화에는 어김없이 늙은 남자가 등장한다. 강변의 호텔에 공짜로 묶고 있는 시인 영환(기주봉)이다. 불륜에 빠져 오래전 집을 나온 그는 문득 그동안 왕래 없이 지낸 두 아들 경수(권해효)와 병수(유준상)를 부른다. 괜스레 자신이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영환이 묵는 방 건너편에는 같이 살던 남자에게 배신당한 상희(김민희)가 묵고 있다. 유부남이었던 남자가 자신을 떠나 가정으로 돌아가자 그는 왼손에 남은 화상마냥 깊은 상처를 입는다. 위로를 해주러 온 선배 연주(송선미)에게나마 가슴속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극의 두 축인 영환과 상희의 공통분모는 불륜이다. 실제 홍 감독과 김민희의 상황을 연상케 하는 자기고백적 대사들이 쏟아진다. 상희를 버린 남자를 향해 “인간도 아니”라고 비난하는 연주에게 상희는 “나는 잃은 거 없다. 그냥 너무 힘들 뿐이다. 지금은 그 사람이 불쌍하다”고 연민한다.


영환의 대사는 훨씬 노골적이다. “(아내에게) 미안한 것 때문에 살 순 없다. 사랑을 따라가야 되겠더라”고 잘라 말한다. 아내의 원망은 경수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아버지가) 인간이 아니래요. 인간 아닌 괴물 같은 존재. 좋은 점은 하나도 없다고. 완전한 괴물이래요. 세상에서 제일 나쁜 인간.”

‘강변호텔’은 홍 감독의 스물세 번째 장편영화다. 직설화법으로 빚어내는 특유의 유머 코드가 두드러진다. 홍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하면 난해하지 않고 대중적인 편이다. 정적인 정서가 흑백 화면 가득히 채워지는데, 특히 눈 덮인 강과 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화면의 영상미가 빼어나다.

연인 김민희와의 호흡은 안정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지루하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밤의 해변에서 혼자’ ‘그 후’ ‘클레어의 카메라’(이상 2017) ‘풀잎들’(2018)에 이은 여섯 번째 합작. ‘홍상수 월드’에서 꽃피었던 김민희의 연기력도 언제부턴가 답보 상태다. 27일 개봉. 95분. 15세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