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방경찰청이 지난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작한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수사에 대해 검찰이 “수사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수사권 남용의 논란을 야기한 수사”라고 규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검찰 지휘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기소 의견을 고집했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울산지검은 지난 15일 김 전 시장의 비서실장이던 박모씨 등 측근 3명의 직권남용,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모두 ‘혐의 없음’ 처분했다. 울산경찰청은 지난해 3월부터 9개월간 수사를 벌인 끝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었다.
21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검찰의 불기소 결정서는 이례적으로 긴 95쪽 분량으로 작성됐다. 검찰은 이 중 60여쪽을 사건의 특수성과 경찰 수사 상황 및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할애했다.
결정서는 ‘정치개입 수사 및 피의사실공표 논란’이란 문패를 달고 시작한다. 결정서에 따르면 경찰청은 2017년 12월 김 전 시장과 측근들에 대한 범죄첩보를 울산경찰청에 하달했다. 사실상 하명 수사일 수 있다는 뜻이다. 경찰은 3개월가량 내사를 벌이다가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지난해 3월 13일 수사를 개시했다. 박씨와 울산시 도시창조국장 이모씨, D레미콘회사 대표 김모씨 3명을 입건하고 한날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다. 15일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자 16일 박씨 집무실 등 울산시청 5곳을 압수수색했다.
김 전 시장은 경찰 압수수색이 들어온 16일 자유한국당 울산시장 후보 공천이 확정됐다. 검찰은 “직권남용 여부에 대해 판단이 어려운 상태였음에도 압수수색영장의 구체적 피의사실이 언론에 그대로 노출됐다”고 결정서에 적었다. 또 결정서에 반복해서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임을 강조해 정치적 성격의 수사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경찰은 3월 29일 추가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혐의 소명 부족을 이유로 기각했다. 이후 경찰은 선거를 40일 남긴 5월 3일 피의자 3명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혐의 입증이 안 됐다”며 이를 기각하고 보완수사를 지시했다. 그런데 경찰은 같은 달 11일 기소 의견을 달아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이들 3명은 아파트 건설 현장의 레미콘 업체를 선정하면서 경주 지역 업체를 배제하고, 울산의 D레미콘이 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았다. 이 대가로 3차례 골프 접대를 받은 혐의도 적용됐다.
이에 박씨 등은 지역건설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시 조례에 지역업체를 우선 지정하도록 돼 있다고 항변했다. 검찰은 골프 접대 부분 역시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이에 따라 5월과 7월, 9월 세 차례 보완수사를 지시했지만, 경찰은 “승복할 수 없다”며 기소 의견으로 송치 지휘를 해 달라는 건의로 맞섰다. 그 중간에 열린 6·13 지방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송철호 후보(53.66%)가 김 전 시장(38.82%)을 누르고 당선됐다.
검찰은 결국 10월 30일 경찰에 ‘혐의 없음’ 의견으로 사건을 넘기라고 지휘했다. 그러나 울산경찰청은 12월 3일 종전대로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검찰은 “경찰이 검사의 지적을 무시하고 거듭 동일 증거와 무리한 법리해석을 토대로 사건을 송치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피의사실이 지속적으로 공표되는 등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수사권 남용의 논란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신중하지 못한 기소 의견 송치는 수사기관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당은 “희대의 선거공작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당시 울산경찰청장이던 황운하 현 대전경찰청장의 파면을 요구하는 동시에 특검법 발의 준비에도 들어갔다. 황 청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고소·고발, 범죄첩보 이첩 등에 따라 진행된 정상적 수사였으며 선거 때라 엄정중립을 지키려 노력했다. 특검을 환영하며 검찰의 무혐의 결정이 과연 정당했는지 제대로 밝히자”고 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