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뭉치 동생들을 보며 목까지 차올랐던 답답함을 목메는 애잔함으로 바꾼 건 그들을 알뜰살뜰 보살피는 풍상씨였다. 지난 14일 종영한 ‘왜그래 풍상씨’(KBS2)에서 맏형 이풍상 역을 소화한 배우 유준상(50·사진)에게서도 그런 따뜻함이 드문드문 배어나왔다.
“동생들하고 간분실(신동미) 여사가 아직 보고 싶어요. 가장 역할에 감정이입이 정말 많이 됐어요. 실제로 제 동생들이 어릴 때부터 부모의 보살핌 없이 고생했다면 저는 드라마와 똑같이 했을 것 같아요. 연기하다가 눈물이 터져 나올 때가 많았습니다.”
극은 바람 잘 날 없는 다섯 남매 이야기를 다뤘다. 풍상씨가 사건 사고 종합선물세트 같은 동생들의 뒷수습을 도맡아 하는 모습은 한편으로 코믹하면서도 콧등을 시큰하게 했다. 세포가 죽어 검게 물든 풍상씨의 손톱이 모진 세월의 상징이었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준상의 손톱에도 아직 검은빛이 옅게 스며있었다. “아내(배우 홍은희)가 손톱 때를 보더니 열심히 한 것이니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얘기해주더라고요. 다들 정말 열심히 해줬어요. 끝까지 모두 모여 대본 연습을 한 처음이자 마지막 미니시리즈일 거예요. 초반에 남자 배우들이 작가 선생님께 지적을 많이 받았는데, 그것 때문에 진짜 촬영처럼 일어나서 연습하기도 했었고요. 선생님께 부탁을 드리고 따로 만나 3시간 동안 특훈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극 중 풍상씨가 간암에 걸리는 설정이어서, 그는 수척한 모습을 위해 되도록 밥을 먹지 않았다. 유준상은 “친척 중 한 분이 간암에 걸려서 가족 한 명이 간을 줬던 일이 있다. 간암의 증상이 사람마다 달라서 풍상이의 상황과 가장 비슷한 환자 상태를 찾아보며 연습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의 열연으로 드라마 시청률은 최근의 지상파 드라마 침체를 비웃듯 22.7%(닐슨코리아)까지 치솟았다. 다만 ‘막장극의 대가’로 곧잘 불리는 문영남 작가의 작품답게 쉴 새 없이 터지는 사건 사고와 과장된 캐릭터 설정으로 눈총을 받기도 했다. 유준상은 ‘막장’이라는 단어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고 했다.
“풍상이네 가족은 사회에서 제일 끝에 몰려있는 사람들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작가 선생님께서는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사람이 어떤 희망을 품고 난관을 헤쳐 나가는지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요즘은 보기 힘든 가족 간의 끈끈한 소통도 담겨있고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말에 대한 답을 얼른 드리고 싶었는데, 좀 늦게 결말에 나왔습니다(웃음).”
그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아들 둘을 바라보는 마음이 확실히 달라진 것 같다고 했다. 가족들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는 법을 배운 것 같다고.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그는 오는 30일부터 뮤지컬 ‘그날들’을 통해 관객들과 만난다. 유준상은 “무대에 서는 것은 나를 배우로서 계속 불편하게 하고, 게을러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데뷔 25년차임에도 계속 발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신을 편하게 하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쉽게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에서 용기와 힘을 많이 얻었어요. 반백 살에 축복 같은 선물을 받았으니, 이걸 바탕으로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게끔 해야죠.”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