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10조 추경’ 카드 만지작… 문제는 시기·명분·재원

입력 2019-03-22 04:04

‘10조원 추가경정예산’이 급부상하고 있다. 여당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다. 다만 정부는 신중하다. 추경을 한다면 시기와 명분, 재원 조달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여당은 상반기를 원하지만, 정부는 올해 예산을 조기집행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하반기 추경도 고려해볼 수 있다. 미세먼지와 함께 경기 대응수단 추경을 한다면 법적 요건도 살펴야 한다. 추경의 명분으로 ‘경기침체’를 내걸지, ‘대량실업’을 앞세울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 출석해 추경 질문을 받자 “경기 상황과 함께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경 불씨는 ‘미세먼지 추경’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세먼지 대응책으로 추경을 얘기했었다. 이후 여당에서 ‘10조원’이라는 규모를 언급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계획 대비 세수가 많이 걷혔는데 정부가 재정을 보수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전문가들 비판도 ‘추경 편성’에 힘을 싣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국내총생산(GDP)의 0.5% 이상’인 8조~9조원 규모의 추경을 권고했다. ‘10조원 추경설(說)’의 근거다.

추경은 이례적인 조치다. 정부는 시기, 명분, 재원을 따질 수밖에 없다. 연초에 추경이 언급되면서 ‘상반기 편성’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예산 조기집행을 감안하면 하반기로 넘어갈 수도 있다. 정부는 올해 노인 일자리,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에 예산을 조기집행하고 있다. 예산을 상반기에 끌어다 쓰면 상대적으로 하반기에 여윳돈이 사라진다. 이때 추경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경기 대응이라는 목적도 고려해볼 만하다. 통계청은 이르면 상반기 안에 한국 경제의 경기 하강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다. 통계청이 ‘경기 하강’을 공식화하면 그 뒤에 추경을 편성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추경은 GDP를 구성하는 정부 지출을 늘리기 때문에 성장률을 끌어올린다. 물론 경기 하강 여부를 판단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추경을 편성하는 것도 경기 대응의 방법이다.

추경의 명분도 중요하다. 추경은 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대량실업, 전쟁, 법령에 따른 지출 증가와 남북 관계 변화 등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국회는 이달에 미세먼지를 사회재난에 포함했다. 다만 미세먼지 대응에만 9조~10조원에 이르는 추경을 하는 건 명분이 약하다. 다른 ‘간판’으로 경기침체를 내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경기지표에는 개선과 악화 흐름이 뒤섞여 있다. 지난해 성장률은 2.7%로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분기별로 1분기 1.0%에서 2, 3분기 0.6%로 낮아졌다가 4분기 다시 1.0%로 복귀했었다. 대규모 추경이 필요한 경기침체 상황이라고 보기 애매하다. 이에 따라 ‘대량실업’이 추경의 명분으로 거론될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정부는 두 차례 추경을 편성하면서 대량실업을 언급한 바 있다. 올해 2월 실업자 수는 130만명을 돌파하며 2년 만에 가장 많았다.

한편 ‘빚내기 추경’은 부담이다. 지난해 계획보다 더 걷은 세금은 25조4000억원이다. 정부는 13조2000억원의 여유자금(세계잉여금) 중 일반회계인 10조7000억원을 ‘지방교부세 정산→공적자금 출연→채무상환’이라는 절차를 거친 뒤 추경에 투입할 수 있다. 지방교부세로 정산해야 할 금액만 10조5886억원이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