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다음 달 1일부터 진행하기로 한 공동유해발굴사업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이 아직까지 명단을 통보하지 않아서다. 남측은 지난 6일 명단을 통보했으나 북측의 응답은 2주가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남북은 지난해 9·19 군사합의를 통해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 화살머리고지에서 6·25 전사자 공동유해발굴에 합의하고 지난달 말까지 각각 80~100명의 발굴단 명단을 상호 통보하기로 했었다.
이뿐 아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왕래와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도 늦어지고 있다. 진작 이행됐어야 할 사안들이다. 지난해 남북 정상이 우선적으로 해결하기로 한 이산가족 화상상봉과 영상편지 교환 문제 또한 언제 성사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를 비롯해 3·1운동 100주년 공동기념행사 등 남북 정상 및 당국 간 합의사항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실행단계에 접어든 게 없다. 지난 연말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식 행사가 고작이다. 이 역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려야 공사에 착수할 수 있는 사업이다.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을 제외한 여타 사업은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니어서 남북이 마음만 먹으면 즉시 실천에 옮길 수 있다. 남북이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마저 지지부진한 것은 북한이 합의를 위반해서다. 기대와 달리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화풀이를 남측에 하는 듯하다.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을 통해 다진 상호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적극적 중재를 원한다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과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같은 경제 관련 사업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북한의 속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남측이 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저간의 사정을 북측도 알지 않는가. 인도적 사업이나 군사적 긴장완화, 문화교류 등은 외면하면서 경제적 이득이 되는 사업들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은 남측의 대북 경계심만 자극할 뿐이다. 가능한 사업부터 우선 실천에 옮기는 것이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를 앞당기는 지름길이다. 남북이 대립한 상태에서 북·미 관계 진전을 기대하는 건 나무에서 생선 찾기다.
[사설] 판문점·평양선언 휴지 조각으로 만들 셈인가
입력 2019-03-22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