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망막 앞에 또 다른 막 붙으면 ‘황반주름’, 침침한 시야 유발… 세월이 낳은 불청객

입력 2019-03-24 18:43

“사물이 휘어져 보여요. 가까운 안과에 갔었는데 원장님이 망막검사를 받아야 한대요. 인터넷을 찾아봤죠. 그랬더니 제 증상이 황반변성과 비슷한 거예요. 실명을 한다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5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걱정이 넘친다. 사물이 휘어져 보인다면 둘 중 하나다. 황반변성, 아니면 황반주름이다. 두 병은 다 노화와 관련이 있지만, 닮은 듯 사뭇 다른 병이다. 눈 속을 들여다보니 다행히 수술로 시력소실을 막을 수 있는 황반주름이다.

노란 반점, 황반(黃斑)은 망막 한 가운데 오목한 함몰 부위에 위치한 직경 3㎜쯤 되는 타원형의 진한 갈색 점을 이른다. 볼펜 자국만한 크기다. 그러나 원뿔세포(시각세포)가 가장 많은 곳이다. 우리 눈의 색각과 정밀시력을 주관하는 아주 중요한 부위다. 그렇다면 황반변성과 황반주름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것일까. 황반변성이 망막에 찌꺼기가 쌓이는 병이라면, 황반주름은 망막 앞에 또 다른 막(망막앞막)이 붙는 병이다.

황반변성으로 망막에 노폐물이 쌓이면 망막 아래 혈관이 산소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망막에 산소가 부족해지면 망막 아래 혈관이 신생(新生)혈관을 만들어 망막 속으로 뚫고 들어간다. 새로운 산소공급 루트를 만들어 망막을 살리려는 일종의 자구책이다. 나이 들어 눈에 황반변성으로 사물이 휘어져 보이고, 작은 암점(暗點)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생혈관, 즉 새로 생긴 혈관은 정상 혈관에 비해 너무 약해서 작은 자극에도 쉽게 터진다. 그래서 망막이 피로 얼룩지고, 피 속의 철분에 의해 시세포가 손상을 받게 된다. 결국 더 이상 사물을 잘 볼 수가 없게 된다.

이에 반해 황반주름은 노화로 눈 속에 꽉 차 있던 풀 같은 물(유리체)이 오그라들면서 망막으로부터 분리가 될 때 망막 표면을 미세하게 손상시키고, 그로 인해 시력이 떨어지게 되는 병이다. 우리 눈은 망막표면이 손상됐을 때 역시 그 표면을 살릴 생각으로 다양한 세포들을 끌어 모은다. 이 세포들이 과도하게 증식을 하고 서로 들러붙어서 망막앞막을 형성하는 게 속칭 황반주름이다.

새로 생긴 앞막이 비닐과 같이 얇을 때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 비닐 막이 좀 더 두꺼워져 오그라들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 아래 망막도 덩달아 구겨질 수 있어서다. 그 결과 사물이 휘어져 보이고, 시력도 떨어지게 된다.

황반주름은 망막 앞에 붙어있는 막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치료한다. 앞막이 없어지고 황반주름이 펴지면 시력도 어느 정도 개선된다. 시력이 안 좋아진다 해도 이후 시력이 더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망막앞막제거수술은 최근 망막전문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수술이다. 그 만큼 많이 생기고 있다는 뜻이다. 예전에 어르신들께서 ‘그저 나이가 많아서 침침한 것이겠지’ 하며 넘어갔던 병이다. 황반주름은 고령화 사회가 낳은 또 하나의 그늘이다.

이성진 순천향대서울병원 안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