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은 인재 “지열발전이 촉발”

입력 2019-03-21 04:01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20일 열린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연구단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공동조사단장인 세민 게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관측 이래 한반도에서 두 번째로 강력했던 2017년 11월 15일 포항지진(규모 5.4)이 인근 포항지열발전소의 물 주입에서 촉발된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이 20일 발표한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 조사연구 결과에 따르면 포항지진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지진이 아닌 ‘촉발지진’이었다. 시추 과정에서 주입시킨 진흙(이수·mud)이 누출됐고, 또 발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지하 암반에 물을 주입해 인공적인 틈을 만드는 ‘수리자극’ 과정에서 그 압력이 주변 단층으로 확산된 게 지진의 원인이었다. 주변 단층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인재’라는 설명이다. 연구단은 포항지진을 포함해 지열발전 부지 부근에서 발생한 98개 지진의 정확한 진원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수리자극으로 생긴 미소지진(규모 1~3 사이 지진) 발생 지역과 포항지진의 단층면해(단층의 모양, 움직임)가 일치했다.


지열발전은 깊은 땅속으로 시추해 들어간 뒤 열을 이용해 물을 덥혀 수증기로 만들고, 그 압력으로 터빈을 돌리는 방식이다. 포항지열발전소는 특히 화산이 없는 지역에서 사용하는 최신 기술인 인공저류지열시스템(EGS) 방식을 사용했다. 지진 당시 완공률 90%로 상업운전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전부터 주기적으로 굴착과 함께 땅에 물을 주입하고 빼내는 작업을 반복해 왔다.

이번 연구의 해외조사단장을 맡은 쉐민 게 미국 콜로라도대 지질학과 교수는 “포항지진은 EGS 자극으로 촉발됐다”면서 “유체(流體) 주입이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단층대를 활성화시켰으며 이후 포항지진 본진에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조사 결과로 포항지진이 인재라는 게 명확히 드러났다고 평했다. 운암철 기상청 지진분석관은 “설계할 때부터 지반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했어야 했고, 이후 공사 과정에서 이수 누출이 발생할 때에 맞춰 지진 진도가 늘어난 걸 알아챘다면 원인을 파악해 제대로 대응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다만 연구단은 포항 지진의 규모는 지열발전만으로 생길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유발(induced)지진과 촉발(triggered)지진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즉 포항지진의 일부만 지열발전의 책임이고 나머지 더 큰 부분은 지열발전 외 요인이라는 뜻이다. 향후 정부의 책임을 따질 때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지점이다.

정부는 지열발전소 완전 폐쇄, 해당 부지 원상복구에 들어갔다. 해당 사업의 진행 과정과 부지 선정 적정성 여부 등에 대한 진상조사도 진행할 계획이다. 또 올해부터 5년간 2257억원을 투입해 ‘포항 흥해(읍) 특별재생사업’을 벌여 주택 및 기반시설 정비, 공동시설 설치 등을 추진한다.

조효석 기자, 세종=이성규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