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법(공수처법) 등 쟁점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 추진을 둘러싼 바른미래당 내부 갈등이 폭발 직전까지 갔다. 바른미래당 지도부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자당의 공수처법이 관철되지 않으면 패스트트랙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더불어민주당 민주평화당 정의당까지 포함된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공조’도 삐걱거리고 있다.
20일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선거제 개편안 등 패스트트랙 추진 여부를 놓고 찬반 양측이 일촉즉발 상황까지 갔다. 한 달여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바른정당계 좌장 유승민 의원은 선거제 개편안의 패스트트랙 처리는 물론 선거제 개편안과 쟁점 법안의 연계 처리도 반대했다. 유 의원은 이 자리에서 “선거법은 게임의 규칙이기 때문에 숫자를 앞세워서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선거법이라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당이 민주당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김관영 원내대표와 함께 원내 협상을 책임져온 유의동 원내수석부대표조차 김 원내대표에게 “저도 설득이 안 되는데 어떻게 패스트트랙을 상정할 수 있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김성식·채이배 의원 등 국민의당 출신 의원 다수는 선거제 개편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주장하며 지도부에 힘을 실었다. 김 원내대표도 여야 4당의 최종 합의안이 나오면 무기명 투표를 해서라도 패스트트랙 추진 여부를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찬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오전 9시 시작된 의총은 점심시간을 지나 5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의총장 밖으로 고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김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앞으로 꾸준히 당의 의견을 모아가며 패스트트랙 협상을 이어가되 공수처법과 관련한 바른미래당의 당론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더 이상 패스트트랙 절차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선거제 개편안과 공수처법 등 쟁점 법안의 연계 기조는 유지하면서도 패스트트랙 추진에 대한 내부 반발 기류를 의식해 철회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바른미래당 기류가 달라지면서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공조도 불투명해졌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공수처장 추천위원회를 만들어 위원의 5분의 3 이상 동의를 거치도록 하는 바른미래당의 제안에 민주당이 난색을 표하고 있는 데다 평화당이 패스트트랙 동참 조건으로 내건 ‘5·18역사왜곡특별법’의 패스트트랙 지정 문제를 두고도 바른미래당 일각에서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 바른미래당 의원은 “결국 시간문제일 뿐 패스트트랙 공조는 깨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여야 4당 간 최종 협상안이 도출되면 의총을 다시 소집하겠다고 밝혔지만 당내에서는 의총을 거듭할수록 내부 갈등의 골이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당 핵심 관계자는 “이 갈등의 본질은 결국 노선 갈등”이라며 “바른정당계는 손학규 대표 등이 평화당·민주당과 연대할 것을 우려하고 있고, 국민의당계는 자칫 자유한국당에 흡수될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우파 야권이 단결해 좌파독재를 저지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세력을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패스트트랙 정국을 계기로 바른미래당 흔들기에 본격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종선 이형민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