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위탁서 공공 직접 운영으로… 복지서비스 질적 도약 기대”

입력 2019-03-21 17:59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출범식이 열린 다음 날인 지난 12일 주진우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원장은 서울시청 3층 소회의실에서 인터뷰에 응해 1시간 넘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주 원장은 2014년 서울시 ‘사회적일자리공단설립TF’를 시작으로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까지 지난 5년간 사회서비스원 설립 준비를 주도해 왔다. 김지훈 기자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라는 조직이 지난 11일 출범했다. 장래에 한국이 북유럽처럼 복지국가로 불리게 되는 날이 온다면 사회서비스원의 출범은 결정적 순간으로 회고될지 모른다.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고아들을 돌보는 일로부터 태동한 한국의 사회복지는 공공이 재정을 부담하더라도 운영은 민간에 맡기는 모델을 고수해 왔다. 사회서비스원은 민간위탁 중심이던 사회복지 서비스를 공공이 직접 제공하는 시대로 전환하는 초유의 실험이다.

주진우(55)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초대 원장은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고령화와 여성 경제활동 증가로 돌봄이나 보육 등 사회서비스에 대한 투자가 비약적으로 늘어났지만 공공이 사회복지시설을 직접 운영하는 비율은 0.4%에 불과하다”면서 “우리나라의 복지제도가 민간을 공급 주체로 상정해 설계돼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0.4%라는 공공 직접운영 비율은 스웨덴의 72%, 일본의 28%에 비하면 지나치게 적다. 어린이집을 예로 들면, 국공립어린이집 비율이 전국적으로 8%쯤 되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경우는 0.2%에 불과하다. 국공립 시설이어도 민간에 위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 원장은 “복지가 국민들의 보편적 서비스로 인식되면서 국가가 서비스 운영에서도 공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면서 “사회복지분야에서는 10여년 전부터 공공 직접운영을 요구해 왔고, 서울시가 이들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2014년 지금의 사회서비스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회적일자리공단’ 설립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5년간 준비해온 사회서비스원은 문재인정부에서 공약으로 채택됐고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특히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가 공공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지난해 12월 마침내 ‘사회서비스원 운영계획’이 발표됐다.

주 원장은 서울시에서 ‘사회적일자리공단태스크포스(TF)’를 이끌었고, 정부 일자리위원회에 전문위원으로 들어가 사회서비스원소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민주노총 출신의 주 원장은 박원순 시장 당선과 함께 서울시에 들어와 노동보좌관, 정책특보 등으로 일했다.

주 원장은 민간위탁에 의존해온 한국적 사회서비스 모델이 초래한 가장 큰 문제로 종사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든다. 그는 “사회서비스직 종사자들을 전 산업 평균 노동자들과 비교하면 임금은 낮고 노동시간은 길고 비정규직 비율은 훨씬 높다는 특징을 보인다”면서 “특히 집으로 찾아가서 치매환자를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경우, 일이 상당히 힘든데 월 90만원 정도 수입을 올린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가장 열악한 경우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그는 이어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등은 이용자가 부르면 그때마다 가서 일하는 ‘호출근로’ 성격이 강하다. 풀타임 노동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수입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사회서비스원은 이들을 직접고용하고 풀타임 노동을 할 수 있게 조직해 안정된 월급을 보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만 해도 사회서비스직 종사자 숫자는 1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 숫자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회서비스원에서 이들 전체를 고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서비스원의 출범은 민간 복지분야에 자극을 줄 수 있다.

주 원장은 “사회서비스원을 통해 표준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면서 “그것이 민간분야의 서비스 개선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고 일자리 질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공이 사회서비스 공급의 다수를 점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공공 직접운영 비율을 현재의 0.4%에서 2022년까지 5%로 늘리겠다는 게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의 목표다. 앞으로도 민간이 사회서비스 시장의 다수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회서비스원의 출범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게 보육이다. 서울시가 사회서비스원을 통해 국공립 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기존 어린이집 사업자들의 반발이 컸다. 결국 서울시는 내년부터 해마다 신설 국공립 어린이집 중 5곳씩만 직접 운영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주 원장은 “어린이집은 민간에 맡기면 되지 왜 공공이 직접 운영하려고 하느냐는 문제제기가 많았다”면서도 “보육교사들의 고용 안정이나 처우 개선 등 어린이집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어린이집 직접 운영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어린이집 비중이 축소됨에 따라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은 앞으로 ‘종합재가센터’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은 2022년까지 서울 25개 전 자치구에 하나씩 종합재가센터를 설치하고 운영한다. 종합재가센터는 노인방문요양, 노인돌봄, 장애인 활동 지원, 데이케어(주·야간 보호)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한다.

사회서비스원은 일자리 측면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은 올해 500명으로 시작해 3년 후엔 직원 4000명의 거대 조직이 된다. 서울을 시작으로 연내 대구와 경남, 경기에서도 사회서비스원이 생기고 2022년까지 전국 시·도에 설치된다. 전국적으로 6만여명이 고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 원장은 “복지서비스는 기본적으로 휴먼 서비스”라며 “종사자들의 일자리 질이 안 좋으면 이들이 제공하는 대시민 서비스의 질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회서비스원의 출범은 양적 확대에만 치중해온 한국의 복지정책이 서비스 질에 대한 고민으로 이동했다는 의미도 된다. 주 원장은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복지 논의를 해온 게 10년 정도 되는 것 같다. 보편적 복지라고 하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단기간에 복지 지출이 굉장히 많이 늘어난 게 사실”이라며 “사회서비스원은 공공이 재정만 책임지는 게 아니라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으로 국내 복지서비스의 질적 도약을 가져올 것”이라고 얘기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