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한 중학교는 20일 민방위의 날을 맞아 화재 대피 훈련을 실시했다.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진행한 훈련이었다. 매뉴얼대로 전교생이 교사들의 안내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운동장 스탠드에 집결했다. 새 학기여서 신입생들이 대피 루트를 파악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학생들은 10여분 스탠드에 앉아 안전교육을 받은 뒤 교실로 복귀했다. 그러나 훈련 뒤 학교는 학부모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미세먼지 ‘나쁨’인 날에 왜 화재대피 훈련을 했느냐는 불만이었다.
정부 지침이 현장 교사까지 제대로 전파되지 않아 발생한 혼선으로 파악됐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1일 교육부를 통해 시·도교육청에 안내 공문을 보냈다. 20일 실시되는 민방위의 날에 화재 대피 훈련을 하되 미세먼지 주의보나 경보가 발령되면 학교장 재량에 따라 실내에서 대피 교육을 하란 내용이었다. 그러나 해당 학교 담당자는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해당 공문을 일선 학교에 전달하지는 않았다. 문의가 오는 학교만 실내에서 훈련하도록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미세먼지가 꼭 필요한 안전훈련뿐만 아니라 정규 교육 활동에도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지난 11일부터 18일까지 초등학교 교사 1414명을 대상으로 미세먼지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해 20일 발표했다. 교사들이 피부로 느끼는 미세먼지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먼저 학생 및 교직원 건강과 학교 수업에 얼마나 지장을 주는지 묻자 90.6%가 ‘심각하다’고 답변했다. ‘매우 심각’이 55.7%였고 ‘심각’이 34.9%로 나타났다. 또한 수업 파행 상황을 묻는 질문에 96.8%가 ‘체육수업 취소 또는 실내 활동으로 대체’, 86.1%는 ‘학교 밖 체험활동 및 학교행사 취소 또는 실내 활동 대체’를 꼽았다.
미세먼지 때문에 휴업이나 단축 수업은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총은 “실제로 미세먼지 비상 저감 조치가 연달아 시행되는 등 최악의 수준에도 학교에서는 1년에 채워야 하는 수업시수, 수업일수 때문에 단축수업, 휴업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선 학교들은 정부가 ‘학교장 재량’을 명분으로 미세먼지 책임을 학교에 떠넘긴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하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반응이었다. 학교에서 취하는 조치로는 교실 밖 활동 자제(92%), 공기청정기 구입 및 가동(71.9%), 학생 마스크 착용(71.6%) 등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정모 교사는 “체육수업은 1주일에 3시간을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체육관이 없는 학교도 있고 체육관이 있더라도 다른 반도 있기 때문에 (이렇게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 이어지면) 1주일에 한 번 정도 사용할 뿐”이라면서 “미세먼지가 발생하면 학생들은 교실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는데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