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안보 우려 제기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주요 항구 4곳을 중국에 개방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탈리아 내부에선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화”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에 대한 ‘모욕’이란 지적도 제기됐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1~24일 이탈리아를 방문할 때 이탈리아 항구 4곳과 투자협력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0일 보도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시 주석 방문기간 유럽 국가 중 처음으로 중국과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에 참여하는 양해각서(MOU)에 서명한다.
현재 중국의 투자대상으로 거론되는 항구는 이탈리아 최대 항구인 서북부 제노바와 남부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북부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 라벤나 등 4곳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중국 국영기업에 항구 관리나 지분 보유를 허용하는 쪽으로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제노바는 이미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교통건설(CCCC)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았다. 시 주석이 방문할 예정인 팔레르모는 중국 해운사 유치를 원하고 있다. 트리에스테와 라벤나는 일대일로 MOU에 포함될 전망이다.
앞서 중국 국영 해운기업 중국원양해운(Cosco)은 2008년 그리스 최대 항구이자 해운산업의 중심지인 피레우프스항 운영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2016년에는 지분 67%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중국 기업들은 이후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사 유로맥스의 지분 35%를 인수하고, 벨기에 앤트워프 항만 지분 20%도 확보했으며, 독일 함부르크항에는 터미널 건설을 추진 중이다.
중국의 이탈리아 항구 진출에 대해 EU와 미국뿐 아니라 이탈리아 내에서도 이탈리아 경제에 침투하는 ‘트로이 목마’가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트리에스테에 인접한 베네토주의 주지사는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를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화”라고 비판하며 “중국은 이미 아프리카를 침공했고, 이제 유럽과 우리 항구에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콘테 총리는 그러나 중국과의 협력이 이탈리아의 지정학적 지위나 미국·유럽 사이의 대서양 동맹에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는 이달 초 “중국과의 협력은 이탈리아에 커다란 기회를 열어줄 것”이라며 “특히 제노바와 트리에스테는 유럽에서 새로운 실크로드의 터미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