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올라와 처음 만난 반 친구들은 내 모든 게 싫었나 보다. 웃을 때마다 목을 옆으로 기울이는 버릇을 두고 ‘목 삐뚤이’라 놀려댔다. 그 놀림에 울면, 우는 게 괴물 같다고 또 놀렸다.… 체육시간이 제일 무서웠다. 아이들은 넓은 운동장에서 선생님의 눈을 피해 나를 때렸다. 카우보이 흉내를 낸답시고 줄넘기를 목에 걸어 잡아당기는가 하면 가슴을 주무르기도 했다.… 괴롭힘과 폭력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 선생님께 말했지만 가해 친구들의 이야기만 들었다. 혼자 끙끙 앓았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나도 모르게 빨대를 씹어 먹고 있었다. 때론 연필을 오른손으로 쥐었는지 왼손으로 쥐었는지 기억이 안 났다.… 이런 내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가 그간의 사건을 알게 됐다. 비로소 그들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 남은 건 정신과 치료와 전학뿐이었다.’
1996년 학교폭력 피해를 입었던 송예음(37)씨가 털어놓은 아픈 기억이다. 당시 사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학교폭력이 지금처럼 문제가 되지 않았던 때라 언론의 조명도 받았다. 그해 6월 10일자 국민일보 기사엔 ‘여중생 이지메 충격’이란 제목으로 실렸다. 그런 그녀가 23년 만에 국민일보와 다시 만났다. 그는 화해의 사람으로 변신해 있었다. 19일 서울의 한 대학 기독 동아리 행사에서 만난 송씨는 사건 속 당사자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밝은 모습이었다.
송씨는 지금의 자신이 있게 된 것은 모두 “어머니의 무릎 기도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신앙심이 깊었다. 당시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가해 학생들을 상대로 고소까지 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품기로 했다. 모친의 그런 사랑은 송씨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는 지금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을 위해 다양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대학에서 기독교복지학을 전공한 송씨는 치료레크리에이션 전문과정을 수료하고 미술심리치료 자격증도 땄다. 졸업 후에는 중·고등학교에서 상담교사로 일하며 사역을 이어 나갔다. 이단에 빠진 어머니 탓에 안티크리스천이 된 한 아이를 만나서는 ‘난 언제나 네 편이다. 넌 소중한 존재야’라고 격려했고 진심을 담아 기도했다. 그 결과 아이는 하나님을 영접해 방언의 은사까지 받았다.
송씨가 청소년기의 아픔을 쉽게 잊은 건 아니었다. 어릴 적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눈물의 기도가 필요했다. 한번은 청년시절 몸담고 있던 한국대학생선교회(CCC)의 정기 모임이 학교폭력을 당했던 중학교 근처에서 진행된 적이 있었다. 생각만 해도 너무 힘들어 기도도 안 나왔다고 한다. 아픈 기억이 되살아났고 몸까지 떨렸다. 하지만 용기를 내 정기 모임 전에 먼저 찾아갔다. 그곳 땅을 밟으며 가해자들을 용서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송씨가 이렇게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데는 고교 시절, 기독교 동아리에서 만난 선배와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그들은 중보기도를 하며 아픔을 함께했다. 대학에서는 교수의 도움과 치유상담 수업을 통해 조금씩 회복해 갔다. CCC 여름수련회에서는 하나님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도 알게 됐다. 그렇게 조금씩 상처에서 회복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전도지에 리본 공예 등을 덧붙여 재가공하는 1인 기업 ‘C-ReStory’의 대표로 일한다. 비슷한 상처를 받은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높여주는 스토리텔링 여행도 기획 중이다. 그는 “주님은 나만이 가진 색깔 그대로를 사용하신다”며 “앞으로 학교폭력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들을 위한 치유 사역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