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김영석] 성적 일탈이 고작 품위손상이라니

입력 2019-03-21 04:02

프로야구 선수들의 일탈 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문화가 발달하면서 그들의 사건·사고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이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조직이 바로 KBO 상벌위원회다. 선수들의 일탈 행위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야구계의 ‘포청천’이라고 할 수 있다. 상벌위원회는 1990년 5월 만들어졌다. KBO 총재의 자문기관이다. 야구 규약을 보면 설치 목적은 ‘프로야구 발전과 명예를 위해 현저하게 공헌을 하거나 KBO 정관, 규약, 리그 규정, 야구 규칙 등을 위배해 리그의 품위를 손상케 한 구단과 개인에 대해 적절한 상벌을 과하는 것’이라고 돼 있다. 상벌위는 총재가 위촉하는 야구 관계 인사로 구성된다. 임기는 1년이며, 중임도 가능하다. 활동 보수가 따로 지급되지 않는 명예직이다.

상벌위는 지난해 1월부터 현재까지 12차례 개최됐다. 포상을 준 적은 단 한 차례뿐이다. 지난해 11월 27일 승부 조작 제안을 자진 신고한 두산 베어스 이영하와 뺑소니범 검거를 도운 롯데 자이언츠 오현택에게 각각 5000만원과 5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했다. 나머지 회의는 제재를 위해 개최됐다. 이때마다 등장한 야구 규약은 제151조 ‘품위손상행위’였다. 제재 대상 행위를 보면 마약류와 병역 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확인된 경우에는 실격 처분 또는 직무 정지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특히 3항에는 인종차별, 가정폭력, 성폭력, 음주운전, 도박, 도핑 등 경기 외적인 행위와 관련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면 실격처분, 직무 정지, 참가활동정지, 출장정지, 제재금 부과 또는 경고 처분을 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KBO는 올해부터 제재 규정을 세분화했다. 온정주의와 상황에 따른 아전인수격 해석을 줄이자는 취지다.

그런데 출발부터 잘못됐다. 가정폭력과 성폭력, 음주운전, 도박과 도핑은 각종 법규에 명시된 명백한 범죄 행위다. 마약류 사건과 병역 비리 사건도 각종 법률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되는 위법 사항이다. 상벌위가 품위손상행위로 접근하기에 언제나 솜방망이 처벌 또는 말뿐인 엄벌이라는 비난이 뒤따른다. 철 지난 레코드를 매번 돌리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대로는 매년 반복되는 일탈 행위를 끊을 수 없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선수들의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처 방식은 KBO와 다르다. 바로 무관용 원칙이다. 특히 가정 폭력과 성폭행, 아동학대 등에 대해선 처벌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선수의 불법 행위나 불미스러운 행동에 대해 먼저 강력한 조처를 함으로써 메이저리그 소속 선수들이 사회의 롤모델로 자리 잡게 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할 당시 캐치프레이즈는 ‘어린이에게 꿈을, 젊은이에게 정열을, 온 국민에게 건전한 여가를’이었다. 지금도 많은 어린이 야구팬들은 프로야구 선수들을 보며 꿈과 희망을 키운다. 그러나 여전히 야구 선수들은 야구와 사생활은 별개라는 생각에 젖어 있다. 물의를 일으킨 선수 대부분은 야구로 보답하겠다는 사과 아닌 사과를 내놓기 일쑤다.

많은 팬은 음주운전과 성폭행, 약물, 도박 범죄에 연루된 선수들이 마치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프로야구의 생존 기반인 야구팬들을 실망시켰기에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클린베이스볼을 구호로만 외칠 게 아니다.

KBO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일탈 행위를 품위손상이라는 고상한 단어를 잣대로 접근할 게 아니라 범법행위로 규정해야 한다. 품위손상행위라는 단어 자체를 손질할 때가 됐다. 한발 더 나아가 메이저리그처럼 상벌위 산하에 상설 조사위원회를 두고 직접 조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변명 투성이로 일관된 구단과 개인의 보고서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제재 조항 적용에서도 무관용 원칙을 과감히 도입하는 게 온당하다.

김영석 스포츠레저부 선임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