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아래
꽃잎 속에서 햇빛은 투명해진다.
그 아래로 사람들이 걸어간다.
잠시 우리도 투명해지는 시간이다.
봄을 따라나서는 시간이다.
한 번도 우리를 스쳐 지나가지 않은
풋사랑을 기억하라는 듯
꽃잎은 지면서
떨어지면서 말을 하는 것만 같다.
다는 말하지 못하고 있는데
넉잠누에처럼 꽃잎 갉아먹는
소나기가 내린다.
사람들은 서둘러 벚꽃나무 길에서 흩어져
어딘가로 간다.
비의 시간 속에서
봄을 데려가는 것은 투명해진다.
지영환의 시집 ‘별처럼 사랑을 배치하고 싶다’(민음사) 중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시인 지영환은 2004년 계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그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감지하기 어려운 자연의 변화와 우주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두 번째 시집인 이 시집의 제목에 들어간 ‘별’은 나태해지기 쉬운 우리 삶의 지표다. 시인이 관찰하는 태양계는 태초에 간직했으나 지금은 잃어버린 정신의 근원을 상징한다. 그는 한국일보 고운문화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