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이 선거법 개편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 위에서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마주보고 달리고 있다. 김관영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배수진을 치고 패스트트랙 지정을 추진 중이지만 이에 반발하는 기류가 심상치 않다. 지도부의 리더십도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패스트트랙 가동의 열쇠를 쥔 바른미래당의 내전 발발은 패스트트랙 논의 자체의 궤도이탈 신호이기도 하다.
지상욱 의원을 비롯한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 8명은 19일 김 원내대표에게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바른정당계 좌장인 유승민 의원도 이에 동참했다. 바른미래당은 20일 오전 9시 비공개 의총을 열기로 했다.
지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의회민주주의와 당헌·당규를 함께 파괴하고 있다”며 김 원내대표를 공개 비판했다. 그는 “선거법은 이미 여야 4당 지도부가 합의해 각 당의 추인을 받는 단계인데도 우리 당 원내대표는 당론 추인 없이 이 문제를 결정하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김 원내대표의 오전 원내정책회의 직후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앞서 기자들과 만나 “당 일부에서 패스트트랙을 추진하려면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그건 당헌·당규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라며 “(패스트트랙 지정에) 당론을 모으는 절차가 의무사항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훨씬 더 많은 의원이 패스트트랙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라며 “다수 입장을 대변해 일 처리를 하는 게 원내대표의 책무”라고 했다.
패스트트랙 문제는 반드시 당론으로 정해야 하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협상 대표자로서 4당 합의안 추인을 강행하겠다는 뜻이다. 이미 불발 시 사퇴 뜻을 밝힌 김 원내대표로서도 물러날 곳이 없는 상황이다.
지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14일 심야 의총에서 결론 내지 못한 문제를 ‘당론 의결 사항이 아니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총에서 원내대표의 해당(害黨)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도 했다. 다른 의원은 “바른정당 출신들은 패스트트랙에 완강히 반대하고 있고, 호남 중진들도 반대하는 분위기”라며 “더불어민주당이 거는 드라이브에, 그것도 정의당만 좋다고 하는 일에 우리가 왜 들러리를 서야 하느냐 하는 문제의식”이라고 전했다. 이 와중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바른미래당 의원들을 개별 접촉해 패스트트랙에서의 이탈을 설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의총은 바른미래당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총 소집 요구서에 이름을 올린 의원 8명과 일부 호남지역 의원 등 10여명이 여야 4당 합의안에 반대할 공산이 크다. 일부 의원들은 지도부 징계 방안까지 거론하고 있다. 당 활동을 하지 않는 의원 4명을 제외한 총 25명을 상대로 표결에 들어가면 3분의 2인 17명 이상의 찬성을 받기 쉽지 않아 당론 채택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의총이 양쪽 간 괴리만 확인한 채 마무리되면 김 원내대표와 손학규 대표의 리더십은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당 관계자는 “의총에서 4당 합의안 추인이 이뤄지지 않으면 김 원내대표는 아주 곤혹스러운 처지가 된다”며 “사실상 지도부 불신임 자리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가 의총 결과와 상관없이 패스트트랙 추진을 고수할 경우 당에서 이탈자가 나오거나 지도부 교체 목소리가 고개를 드는 등의 아노미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호일 이형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