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 논란 속 갈수록 꼬이는 ‘카드수수료 협상’

입력 2019-03-20 04:01

카드수수료율을 낮춰 소상공인을 돕겠다는 정책이 엉뚱한 ‘왜곡’을 낳고 있다. 방향성은 좋지만 디테일과 추진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갈등, 파장이 불거지고 있다. 수익성이 악화된 카드사들과 대형 가맹점의 힘겨루기가 벌어지면서 ‘가맹계약 해지’ 등 극단 상황까지 벌어졌다. 할인·포인트 등 카드사들이 소비자에게 제공하던 혜택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시장 간섭·개입이 소비자 피해를 부르는 것이다. 부랴부랴 금융 당국은 “대형 가맹점이 부당하게 낮은 카드수수료율을 요구하면 형사 고발도 검토하겠다. 소비자 혜택도 단기간에 축소되긴 어려울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카드사와 대형 가맹점 간의 수수료율은 자율적 합의를 통한 해결이 원칙이지만 위법 사항이 확인될 경우 엄중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윤창호 금융위 금융산업국장은 “정부가 발표한 카드수수료율 개편안은 대형 가맹점이 부담해야 하는 수수료율의 공정성을 높인 것”이라며 “영세 가맹점에 대한 카드수수료 인하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위는 카드사와 대형 가맹점 간 수수료율 협상 상황을 살펴본 뒤 실태 점검에 착수할 계획이다. 여신전문금융업법 등은 대형 가맹점이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낮은 수수료율을 요구할 경우 1000만원 이상 벌금형 또는 1년 이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금융 당국의 방침에 카드업계와 대형 가맹점 모두 볼멘소리를 낸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수수료율이 시장에서 결정되는 게 맞는다면 왜 그동안 개입해 왔느냐”고 꼬집었다. 한 대형 가맹점 관계자는 “금융 당국과 얽힐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수수료율 협상을 들여다보고 고발 조치를 검토한다니 당혹스럽다”고 했다.

영세 가맹점의 수수료율 부담을 낮추겠다는 선의의 정책은 왜 자꾸 파열음을 낼까. 전문가들은 카드수수료가 정치권의 선심성 공약으로 사용되면서 ‘시장 왜곡’ 현상이 누적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과거 정부는 세수 파악, 소비 활성화 등을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의무화하는 법(의무수납제)을 만들었다. 정치권은 정부가 3년마다 카드수수료율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선거철마다 수수료율 인하 공약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는 금융 당국이 수많은 카드 가맹점의 수수료율 기준을 일일이 점검하고, 가맹계약 해지 등 소비자 피해를 예방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부실하게 만들어진 카드수수료 관련 법령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와 정치권이 카드 의무수납제를 만들어 영세 가맹점의 협상력을 떨어트려 놓고는 수수료율 인하를 선심성 정책으로 내놓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카드 사용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카드수수료율 관련 법령을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