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남해와 동해를 모두 끼고 있는 도시다. 그렇다면 남해와 동해의 경계는 어디일까. 국립해양조사원, 기상청 등 정부기관마다 다르게 설정하고 있다. 해운대 달맞이언덕에 있는 해월정 앞바다를 분기점으로 잡기도 하고, 오륙도를 기준점으로 삼기도 한다. 어떤 기준을 적용하든 기장군은 동해에 포함된다. 해안선도 거침없이 트인 동해를 닮았다.
기장군은 부산 동해안의 가장 북쪽이다. 포항 구룡포 호미곶이 ‘호랑이 꼬리’라면 기장군은 ‘호랑이 엉덩이 해안’이다. 이곳에 고산 윤선도가 반한 해안 절경이 펼쳐진다. 먼저 ‘황학대’. 기장읍 죽성리에 있다. 죽성리는 원죽, 두호, 월전 등 3개 자연부락을 합한 행정구역으로, 기장읍내에서 얕은 산자락을 돌면 나타나는 자그만 해변 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바닷가 방파제 초입에 ‘황학대’라는 표지판이 서 있는 작은 언덕을 만난다. 1618년 32세에 유배돼 6년 동안 기장에서 생활한 윤선도가 신선이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중국 양쯔강의 ‘황학루’에 빗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황학대 바로 옆 바다 쪽에 최근 지어진 ‘황학정’이 위치해 있다.
황학정에서 남동쪽으로 바라보면 해안으로 튀어나온 바위 언덕에 건물 하나가 외로이 서 있다. 회색 벽돌, 흰색 벽체, 주황색 지붕이 파란 바다와 어우러져 이국적인 경관을 빚어낸다. 2009년 SBS 드라마 ‘드림’을 찍기 위해 만든 ‘죽성드림세트장’이다. 드라마 촬영이 끝난 뒤 철거될 예정이었지만,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이름을 날리면서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지금은 작은 전시실로 사용 중이다.
죽성드림세트장에서 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품을 넓게 펼친 해송이 눈에 들어온다. 죽성리해송(부산기념물 50호)이다. 한 그루처럼 보이지만 다섯 그루가 모여 아름답고 위풍당당한 수형을 자랑한다. 가지가 넓게 드리워 커다란 그늘을 만들고, 해송 아래 벤치가 있어 바다를 보며 쉬기 좋다. 원래 여섯 그루였는데 2003년 태풍 ‘매미’에 한 그루가 희생됐다고 한다.
죽성리해송에서 50m가량 떨어진 곳에 죽성리왜성(부산기념물 48호)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두호마을 뒤 해발 60m 남짓한 구릉에 둘레 960m 규모로 쌓은 일본식 성이다. 성은 본성(本城)과 지성(枝城)으로 나누어져 있다. 산책로를 따라 본성 꼭대기에 오르면 왜성의 흔적과 경사지게 쌓은 일본식 성곽이 눈에 들어온다. 뒤를 돌아보면 죽성리 마을과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왼편 죽성항부터 오른편 월전포구까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왜성이 들어서기 전 죽성리에는 조선 수군의 진지인 ‘두모포진성’이 있었다. 고려 초부터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토성을 조선 중종 5년(1510년) 삼포왜란을 겪은 뒤 석성으로 축조했으나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다.
죽성리에서 남쪽으로 기장해안로를 따라 가면 대변항이다. 기장팔경 중 2경인 죽도와 연화리 마을이 있다. 죽도는 사유지여서 들어갈 수 없다. 죽도로 이어진 연죽교에서 바라보는 대변항의 풍경이 위안이 된다. 연화리 앞바다에서 미역 등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를 볼 수 있다. 제주출신이거나 그들의 2세가 대부분이다. 이들에게서 물질을 배운 현지 해녀들도 적지 않다.
여행메모
멸치 유명한 대변항 4월 19~22일 축제
부모에 자유시간을… ‘키즈 케어 서비스’
수도권에서 승용차를 이용해 부산 기장 죽성리로 바로 간다면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 기장나들목에서 빠지는 것이 편하다. 우회전해 남쪽 기장군청 방면으로 가다 죽성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된다.
기장은 멸치 미역 등으로 유명하다. 멸치잡이 철에는 회나 구이, 정식 등이 별미다. 올해 기장멸치축제는 4월 19~22일 대변항 일원에서 열린다.
기장에 펜션 등 숙소가 많다. 하지만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가까운 해운대에 숙소를 구해도 좋다. 해운대 ‘파라다이스호텔부산’은 교육놀이 전문가이자 호텔 직원들이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며 부모들에게 자유시간을 보장해주는 키즈 케어 서비스 ‘파라다이스 키즈 타임’을 새롭게 선보였다. 아이들에게 안전 및 교통법규 교육, BMW 키즈 모빌리티를 전용 트랙에서 직접 운전할 수 있는 드라이빙 체험 등이 제공된다. 호텔 셰프가 직접 준비한 아이 전용 저녁식사도 주어진다.
지난해 부산발전연구원이 부산 10대 히트상품으로 선정한 ‘해리단길’도 빼놓을 수 없다. 해운대역사 뒤 마을로 들어서면 번화가인 구남로와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 나온다. 2만여㎡ 마을 곳곳에 젊은 느낌의 카페·식당 등 가게 50여개가 알록달록 자리잡고 있다.
기장=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