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다 감독님이 많은 고민을 하셨죠. 영화적 재미냐, 소재에 대한 진심이냐는 기로에서 방향성을 잡아야 했으니까요. 치열하고 집요하게 찍을 수밖에 없었어요. 힘들었지만, 그만큼 성실히 임했습니다. 뭉클해요. 이 영화를 세상에 내놓는다는 게.”
영화 ‘악질경찰’(감독 이정범)을 선보이는 배우 이선균(44)의 마음은 애틋했다. 수십여 편의 출연작을 보유한 그이건만 이번 작품에 남다른 애착이 있는 듯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이 영화에 참여한 것 자체가 내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20일 개봉한 영화는 제목 그대로 악질적 행태를 일삼는 비리경찰의 이야기다. 뒷돈 챙기고 비리를 눈감는 건 물론 범죄를 사주하기까지 하는 경찰 조필호(이선균)가 목돈을 챙기려 경찰 압수창고를 털 계획을 세웠다가 창고 폭발사고의 용의자로 몰리며 걷잡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경찰이 범죄에 연루돼 곤경에 빠지는 얼개는 이선균의 전작 ‘끝까지 간다’(감독 김성훈·2014)를 떠올리게 한다. 이선균은 “겹쳐 보이는 부분이 있겠으나 분명 차이가 있다. ‘끝까지 간다’의 고건수는 최소한 쓰레기 같은 인간은 아닌데 조필호는 그야말로 나쁜 놈”이라고 소개했다.
“조필호 캐릭터를 만들 때는 경찰이기보다 유흥가 뒷골목에서나 볼 법한, 눈 마주치기 싫은 양아치 아저씨로 보였으면 했어요. 감독님도 ‘끝까지 간다’보다 독하게 가달라고 요구하셨죠. 그러면서도 평면적인 표현은 경계했어요. 강인한 인상을 풍기되 내면의 흔들림을 보여주려 했죠.”
이선균이 말한 ‘내면의 흔들림’이란, 극 중 폭발사건의 증거를 쥐고 있는 고등학생 소녀 미나(전소니)를 만나며 겪게 되는 조필호의 변화를 뜻한다. 불법 비자금 조성 사실을 감추려는 거대 재벌기업이 사건의 배후로 드러나면서 궁지에 몰린 두 사람은 서로에게 동질감과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이선균은 “개연성을 얻는 게 숙제였다”면서 “죄책감 없이 악행을 저지르던 필호가 미나와의 만남을 계기로 자기반성을 하는 과정에 설득력이 있어야 했다. ‘(이따위 행동을 하는) 너희도 어른이냐’고 묻는 미나로 인해 필호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악질경찰’은 상업영화로는 처음으로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삼아 여러 말을 낳았다. 극 중 미나가 세월호 희생자의 친구로 설정됐다. 이선균은 “상업영화에서 이 소재를 다룬다는 게 어떻게 비칠까 고민도 했으나 감독님의 진심을 알고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기획 초기인 2015년 당시, 창작자들은 어떻게든 세월호 참사를 환기해야 한다는 고민을 갖고 있었어요. 논란을 예상하고도 이 소재를 택한 이유가 있었던 거죠. 저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와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고, ‘어른들의 반성’을 이야기하고자 한 감독님의 뜻에 공감했어요.”
최근 몇 년간 공백 없는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선균은 또 분주한 걸음을 내딛는다. 이달 말부터 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 촬영에 들어가고, 오는 5월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하반기에는 드라마 ‘검사내전’(JTBC)으로 시청자를 만날 예정이다.
그는 “10년 전부터 1년에 2~3편씩 해 왔다. 올해 개봉 시기가 몰려서 더 바쁜 것처럼 보이는데, 나로서는 했던 대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침의 시기도 있었으나 ‘연기를 계속해도 될까’ 고민하던 때에 마치 기운 내라고 북돋워주듯 좋은 작품들이 들어왔다”고 웃었다.
“새 작품을 만날 때마다 기대가 돼요. 저는 역할을 ‘입는다’고 표현하는데, 어떤 옷을 입더라도 완벽한 ‘핏(fit)’이 나오도록 잘 소화해내고 싶어요. 무슨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지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소화해낼지를 고민하죠. 그게 제가 가지고 있는 욕심이자 목적입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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