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캄보디아 국빈방문 때였다. 캄보디아 총리실에서 열린 한·캄보디아 비즈니스포럼의 ‘1번 테이블’에 손태승(사진) 우리금융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자리했다. 두 나라의 경제협력 방안을 발표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상석’의 의미는 작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앉은 헤드테이블 곁의 이 테이블에는 캄보디아의 고위 경제각료들이 자리했다고 한다. 경제사절단 중에서도 캄보디아 경제를 아는 이만 앉을 수 있는 자리였던 셈이다.
비즈니스포럼에서는 한국과 캄보디아 양측이 번갈아 가며 공동 번영을 테마로 한 발표를 이어갔다. 캄보디아의 값싼 농산물을 서울에 들여와 활용하는 방안이 제시됐고, 캄보디아도 한국처럼 통합된 은행 결제시스템을 구축해 금융결제 시장을 선진화하려 한다는 내용이 소개됐다. 두 나라 경제인들은 주제마다 활발하게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대화를 나눴다.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거론되는 가운데 자금 융통 대목에 이르면 손 회장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당시 경제사절단에는 국내 4대 금융지주사 가운데 우리금융만 유일하게 포함됐다. 우리금융으로서는 고무적인 일이었다. 현장에 동행한 김응철 우리금융 글로벌본부장은 “2014년 소매금융 진출을 시작으로 캄보디아 현지인들의 농업, 어업, 자영업을 돕는 금융시스템을 구축해 왔다”며 “향후 캄보디아 발전에 우리금융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받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보수적 문화가 강한 캄보디아는 외국계 기업의 금융업 진입장벽이 높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손 회장은 직접 현지 금융당국을 방문해 가며 선진금융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반응이 우호적이지만은 않았지만, 우리금융이 주목한 것은 캄보디아 금융업의 성장 가능성이었다. 캄보디아는 최근 5개년 평균 경제성장률이 7%에 이른다. 인구의 90% 이상이 54세 미만인 젊은 국가다. 그런데 은행계좌를 보유한 인구는 22%뿐이다.
우리금융은 2014년 7월 우리파이낸스캄보디아를 시작으로 캄보디아에 뛰어들었다. 농업과 어업, 자영업을 하는 캄보디아 현지인들에게 필요한 소액대출이 출발선이었다. 사회공헌활동을 벌이며 지역사회의 마음을 여는 노력도 병행했다. 지난해 6월에는 프놈펜 지역을 중심으로 WB파이낸스가 문을 열었다. 여신에 이어 수신도 가능해진 것인데, 전국적으로 107개 지점이 확보되며 우리금융의 해외 영업점포는 400곳을 돌파했다.
손 회장은 귀국 후 “우리가 해온 방향이 옳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주변에 말했다고 한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인도 등 11개국을 향한 정부의 신남방정책은 실상 은행권이 겨냥해온 동남아시아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금융의 경우 브루나이 태국 라오스를 뺀 8개국에 이미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다. 8개 나라마다 문화적 기반에 따라 스며드는 전략이 다 다르다. 그 가운데 캄보디아에선 한국 금융권 중 가장 오랜 업력을 자랑한다.
우리금융은 지난달 차량 공유업체 ‘그랩 캄보디아’와 운전자 전용 금융상품 제공을 위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캄보디아 금융시장에 스며드는 범위를 넓히고 있는 우리금융의 남은 목표는 제1 금융권 진출이다. WB파이낸스가 수신 업무를 하고는 있지만, 아직 대형 상업은행에는 도달하지 못한 저축은행의 성격을 띤다. 김 본부장은 “WB파이낸스와 우리파이낸스캄보디아 법인을 합병해 상업은행으로 전환하려는 것이 중장기 목표”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