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적은 여성?… 형제애보다 끈끈한 자매애 보여주마

입력 2019-03-19 21:24
영화 ‘캡틴 마블’

영화 ‘캡틴 마블’에서 눈을 사로잡는 건 우주를 누비는 캐럴 댄버스(브리 라슨)만은 아니다. 과거 절친한 동료였던 전투기 조종사 마리아 램보(라샤나 린치)는 사고로 기억을 잃은 캐럴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일깨워준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사상 가장 강력한 여성 히어로의 탄생에는 여성 동료 마리아의 격려가 있었다.

대중문화 콘텐츠 속 여성들이 끈끈하게 뭉치고 있다.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시장에서도 형제애가 아닌 자매애를 서사 속에 녹여낸 작품들이 속속 선보이는 중이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

갑작스레 노인이 된 25살 혜자(김혜자·한지민 1인2역)의 이야기를 담아낸 드라마 ‘눈이 부시게’(JTBC)에서는 여성들의 유대가 ‘세대 간의 소통’이라는 핵심 주제와 함께 묻어난다. 혜자의 단짝 친구들은 늙어버린 혜자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 이들은 혜자가 자신이 시간을 돌리는 부작용으로 늙어버렸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어색하지”라고 묻자, 눈물을 흘리며 말없이 안아준다. 혜자가 “나는 니들이랑 똑같이 뛸 수가 없다”고 하자 “체력 좀 달리고, 노래방에서 노래하다가 조는 애들이랑은 친구하면 안 되는 거냐”며 되레 화를 낸다.

이처럼 자매애 코드를 활용한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여성들의 이야기도 더 폭넓게 담기게 됐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같은 환경을 공유하는 동성의 이야기는 그 성별이 처한 현실을 깊게 되돌아보는 효과가 있다. 남성과 달리 여성 사이의 유대는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서사로 새롭게 조명될 수 있는 내용이 많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17일 인기리에 종영한 ‘로맨스는 별책부록’(tvN)에는 실제로 여성들이 겪는 고충이 관계 속에서 다채롭게 드러난다. 출판사를 배경으로 차은호(이종석)와 사랑을 키워나가는 강단이(이나영)는 한때 이름을 날리던 카피라이터였지만 출산과 오랜 육아로 ‘경단(경력단절)녀’가 된 인물이다.

극의 백미는 계약직 사원 강단이가 직장 여성 상사들과 함께 클럽에 갔다가 뒤풀이를 하는 장면이다. 마케팅팀장 서영아(김선영)의 제안으로 ‘야자타임’이 시작되는데, 속 깊은 이야기들이 가없이 쏟아진다. 남편의 외도나 실망으로 인한 이혼, 출산에 대한 두려움과 일에 대한 욕심으로 결혼을 포기하게 된 사연 등 여성의 시선이 담긴 고백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자매애 코드가 녹아든 극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더해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다고 봤다. 공 평론가는 “남성 작가가 다수였던 과거에 비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여성 작가들이 늘어난 게 일차적 변화를 이끈 요인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예전엔 여성의 욕망도 남성의 관점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남자를 두고 서로 질투를 하는 등 여성의 적이 여성으로 나타나는 서사가 대표적”이라며 “그 공식이 점차 깨지면서 진짜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길 공간이 더 많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