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네 번째 정상회담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남북 접촉이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과정에 대한 복기를 마친 청와대는 북·미와 동시다발적인 실무접촉을 거쳐 순차적으로 남북 정상의 대좌를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빅딜’을 요구하는 미국과 단계적 합의를 강조하는 북한 측에 ‘굿이너프(good enough)딜’(충분한 수준의 합의)이라는 중재안을 제시하고, 양측이 대화를 이어가도록 설득하는 게 핵심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18일 “하노이 회담(2차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미국과 북한 내부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중재자, 제안자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이행할지 계획을 세우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가정보원은 하노이 회담 직후 각각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북한 통일전선부 등과 접촉해 북·미 협상 과정을 파악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전날 제시한 ‘굿이너프딜’은 북·미 간 입장 차이에 대한 분석을 마친 청와대가 고민 끝에 내놓은 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물밑에서 양측과 실무접촉을 지속하고 있다. 대미 외교는 국정원과 미 중앙정보국(CIA) 라인, 외교부와 미 국무부 라인 등이 건재하지만 북한과는 현재 실무라인 외에 무게감 있는 대화 파트너가 없는 상황이어서 대북 특사 파견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해 두 차례 특사로 방북했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등의 재방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남북 정상 간 접촉은 한·미 정상의 만남과 선후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이르면 다음 달 문 대통령의 미 워싱턴 방문이 예상되는 가운데 지난해 5·26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처럼 불시에 원포인트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북·미 협상이 장기화될수록 불확실성이 커진다고 보는 우리 정부는 양측과의 실무접촉을 마치는 대로 본격적인 대화 중재 모드에 돌입할 전망이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아직 논의 중에 있다. 특사나 원포인트 회담 모두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군 당국은 조만간 남북 군사회담을 열고 9·19 군사합의를 이행하는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국방부는 국회 국방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앞으로 장성급·실무급 남북 군사회담 개최를 통해 올해 안에 군사합의의 실질적 이행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측이 비핵화 협상 중단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상황에서 군 당국 간 긴장완화 조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협상 동력을 살리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취지다. 이번 군사회담에선 다음 달로 예정된 남북 공동유해발굴과 남북 민간선박의 한강하구 자유항행을 위한 군사적 보장조치,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왕래 방안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박세환 김경택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