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는 두테르테… 국제형사재판소 탈퇴 강행

입력 2019-03-18 19:18 수정 2019-03-18 23:22
사진=AP뉴시스

필리핀이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공식 탈퇴했다. 필리핀 시민사회는 로드리고 두테르테(사진) 대통령을 ICC에 제소해 그의 인권탄압을 견제해 왔다. 필리핀이 ICC와 결별하면서 마약과의 전쟁을 핑계로 초법적 권력을 휘둘러온 두테르테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인권을 탄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필리핀의 ICC 탈퇴 저지 운동을 벌여온 변호사 로멜 바가레스는 17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필리핀의 ICC 탈퇴는 초법적 살인을 막기 위해 벌여온 투쟁 가운데 끔찍한 좌절로 기억될 것”이라며 “정부는 지난 2년간 마약과의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수천명의 죽음에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고 말했다.

필리핀 변호사 주드 사비오는 2017년 두테르테 대통령과 법무장관, 경찰청장, 하원의장 등 필리핀 고위관리 11명을 ICC에 제소했다. 2016년 6월 취임한 두테르테 대통령이 1년간 마약범죄 용의자 7000여명을 재판 없이 사살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ICC는 지난해 3월 발표한 예비조사 보고서에서 두테르테 정권이 대량학살에 책임이 있다고 발표했다. 필리핀 정부는 이 조사 결과에 반발해 ICC 탈퇴를 선언했지만 규정에 따라 1년간 탈퇴 유예기간을 거쳤다. 필리핀 내에서는 유예기간 동안 ICC 탈퇴를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았다. ICC에서 탈퇴하면 중국과의 영토분쟁 등 국제분쟁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두테르테 대통령은 탈퇴를 강행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ICC 조사를 피하기 위해 탈퇴를 감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ICC 규정에 따르면 탈퇴 발효일 전에 재판소가 심의를 시작한 사안은 계속 심의하게 돼 있다. 리사 혼티베로스 상원의원도 성명에서 “필리핀의 ICC 탈퇴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추진한 것이지만 ICC 조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더 이상 국제사회 눈치를 보지 않고 마약과의 전쟁을 밀어붙이면서 필리핀 인권탄압 문제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필리핀 경찰은 격렬하게 저항하는 마약범죄자뿐 아니라 가난을 못 이겨 잡범으로 전락한 시민들까지 마구잡이로 공격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필리핀 인권단체 카라파탄의 로미오 클라모르 사무차장은 “도살자에게 길을 열어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필리핀 정부는 ‘초법적 살인’ 자체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경찰이 강력하게 저항하는 마약범죄자를 저지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무기를 사용하거나 마약 갱단끼리 분쟁이 생겨 서로 죽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살바도르 파넬로 필리핀 대통령 대변인은 18일 ICC 탈퇴 기자회견에서 “ICC가 앞으로 필리핀에서 초법적 살인이 더 대담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필리핀에는 초법적 살인이 없다. 헌법에 따라 합당한 절차를 준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