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돌직구’에 헛스윙하는 마흔여섯 이치로

입력 2019-03-18 19:36
타격 천재 스즈키 이치로(46·시애틀 매리너스)가 세월의 힘을 거스르지 못하고 부진이 이어지자 20일부터 이틀간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메이저리그 개막전 시리즈가 이치로의 은퇴 경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연습경기가 끝난 뒤 그라운드에 서 있는 이치로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AP뉴시스

타격 천재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는 것 같다. 어느새 46세가 된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 얘기다.

지난해까지 프로선수로만 27시즌을 치른 이치로는 지금도 여전히 현역이다. 지난해 5월 선수 생활을 중단하고 시애틀 회장의 특별 보좌로 일하면서도 선수단과 동행하며 훈련을 이어갔다. 이치로는 당시 “야구를 계속 연구할 것이다. 40대 선수가 꾸준한 훈련을 거치면 몸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평소 자신의 등번호(51)처럼 “51세까지 현역으로 뛰고 싶다”고 말해온 이치로는 결국 지난 1월 시애틀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메이저리그(MLB)에서도 최고의 노력가로 정평이 나 있던 이치로답게 마흔 중반의 나이에도 그의 몸상태는 매우 좋은 편이다. 지난달 한 미국 언론은 “이치로의 체지방률은 7%로 시애틀 선수 중 가장 낮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올시즌은 오랜 시간 몸에 굳은 타격폼도 수정했다. 양 무릎을 더욱 구부려 무게 중심을 낮추면서 스윙스피드를 높였다. 선수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한 셈이다.

하지만 이치로의 ‘연구’는 지금까지는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첫 시범경기에서 2타수 1안타 2타점을 올리며 타격폼 수정이 빛을 보는 듯했지만 지난 2일(한국시간) 또 하나의 안타를 추가한 뒤 18타석 연속 무안타로 부진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25타수 2안타로 1할대 타율에도 못미친 채 시범경기를 마쳤다. 이치로는 20~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메이저리그 개막시리즈에 앞서 17일 가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연습경기에서도 무안타로 물러났다.

특히 이날 요미우리전에서는 투수들이 오로지 직구만을 던졌는데도 안타를 치지 못했다. 공도 느렸다. 실제로 요미우리 투수들의 구속은 140㎞를 넘지 않았다. 일본프로야구(NPB)를 평정하고 MLB에서도 3000안타 돌파라는 대업을 달성하며 명예의 전당 헌액을 사실상 예약한 천재 이치로지만 가는 세월을 이길 수는 없는 듯했다.

이치로의 부진이 길어지면서 현지 언론은 이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개막전 시리즈가 현역으로서 이치로의 마지막 경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MLB는 외국 원정을 떠나는 두 구단을 배려해 로스터 숫자를 기존 25명에서 일시적으로 28명으로 늘렸다. 25명으로 줄어드는 시점에서 이치로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경우 메이저로의 복귀는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애틀은 이치로뿐만 아니라 사사키 가즈히로, 이와쿠마 히사시 등 일본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입단해 활약한 대표적인 ‘친일’ 구단이다. 그런 시애틀은 지난 1월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의 에이스로서 지난해 팀의 퍼시픽리그 정규시즌 우승을 이끈 좌완 기쿠치 유세이(28)를 영입했다. 시애틀은 기쿠치를 21일 선발로 투입할 예정이다. 이번 개막전을 시애틀의 ‘이치로 시대’가 끝나고 ‘기쿠치 시대’가 열리는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치로는 여전히 현역 연장을 희망하고 있다. 이치로는 “언제 떠날야할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나도 모른다. 난 그런 질문에 익숙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어 “2012년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 됐을 때도, 마이애미 말린스로 이적했을 때도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았다”며 “메이저리그는 언제 떠나라는 통보를 받을지 모르는 힘든 곳이다. 하지만 난 아직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