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주(48)씨는 “너희들은 절대 참지 말라”고 울부짖었다. 조카의 장례식에 온 간호사 친구와 동료들에게 그랬다. 그들 대부분은 “죽지 못해 산다”고 말했다. 김씨는 “가족장으로 조용히 보내고 싶었는데 이렇게 일이 커진 건, 선욱이가 너희들은 그렇게 안 살길 바라서였던 거 같다. 그러니 너희들은 절대 참지 말라”고 당부했다.
지난 13일 경기도 군포의 한 사무실에서 고(故) 박선욱 간호사의 첫째 이모인 김씨를 만났다. 근로복지공단이 박 간호사 유족의 산재신청에 대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다”고 밝힌 지 6일 만이다. 박 간호사는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2월 15일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설 연휴 첫날이었다. 그의 죽음은 이른바 간호계의 ‘태움’(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의 은어)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공론화시켰다.
김씨는 “선욱이가 힘들어할 때 ‘첫 직장은 누구나 힘들다. 하물며 넌 전문직이잖아’라고 한 게 가장 후회된다”고 했다. 그는 “왜 견뎌보라 했는지…. 나름 직장생활 선배라고 깝죽거리며 힘내라 했던 게 너무 후회된다”고 했다.
김씨는 어릴 적부터 박 간호사를 애지중지 아꼈다. 양배추 인형처럼 생긴 조카를 매일같이 안고 다녔다. 그는 “친구들 만날 때도 선욱이를 데려가고 월급의 반은 선욱이한테 썼다”고 말했다. 커서도 근처에 살며 자주 저녁을 먹었다. 명절에도 함께 지내며 화목하게 지냈다.
가족들은 5개월 넘게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다. 박 간호사의 죽음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해서였다. 동사무소에선 ‘사망신고 안 하면 벌금을 문다’며 여러 차례 연락이 왔다. 그때마다 “아직 마음의 준비를 못했다”고 답했다. 미뤄온 사망신고는 산재신청을 위해 했다. 개인의 잘못이 아닌 업무에 따른 사망으로 인정받아야 조카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고 믿었다.
김씨는 산재 인정 소식을 듣자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그는 “선욱이한테 최소한의 약속은 지켰다는 생각을 했다”면서도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박 간호사가 근무한 병원에서는 아직 사과를 받지 못해서다.
김씨는 서울아산병원이 박 간호사의 죽음을 개인 문제로 몰아가려 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수간호사는 박 간호사의 사망소식을 접한 뒤 “(박 간호사와) 카톡이나 문자 주고받았던 사람들은 내용을 캡처해 보내 달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유족들은 무엇인가를 은폐하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박 간호사와 카톡으로 ‘직장 내 괴롭힘’ 정황이 담긴 대화를 나눴던 동료 간호사는 박 간호사를 힘들게 한 선배에 대해 “엄청 좋은 사람이고 일도 잘 가르쳐준다”며 정반대의 말을 했다. 병원도 “당신들 때문에 우리 간호사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며 유족을 만나주지 않았다. 그게 지난해 3월이다. 그 후로 병원과의 연락은 거의 없다. 김씨는 “금방이라도 ‘이모 나 다녀왔습니다’ 하고 문 열고 올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