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부터 경제 성장세 둔화… 기준금리 인상 머뭇거리는 美

입력 2019-03-19 04:01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 1월 30일 워싱턴DC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당시 FOMC에서 연준은 기준금리를 동결했었다. AP뉴시스

“세계의 다른 나라들, 특히 유럽과 일본이 완화적 통화정책에서 벗어나지 않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19~20일(현지시간)에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앞두고 리처드 클라리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부의장은 이같이 말했다. FOMC는 미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기구다.

그간 경제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기준금리를 계속 올려온 미국이지만 각국 중앙은행의 ‘비둘기 행보’ 속에서 혼자 움직이는 걸 고집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모양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클라리다 부의장은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세계 경제는 더욱 취약(fragile)해질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WSJ는 “이제 기준금리 인상은 연내 1차례, 아니면 아예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올해 연준이 2, 3차례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던 시장의 전망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WSJ가 경제전문가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올 9월 이전에 미국 기준금리가 오를 것으로 내다본 비중은 1월 83%에서 이달 25%로 급감했다. 1월 4%에 머물던 인하 예상자는 이달 18%로 늘었다.


연준의 기조가 ‘자신감’에서 ‘인내심’으로 변한다고 예상하는 이유에는 미국에도 영향을 줄 만큼 점점 커져온 세계 경제의 변수들이 있다. 올 들어 연준 관계자들로부터 흘러나온 말을 종합하면 중국과의 무역전쟁 추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형태 등을 지켜볼 필요성은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제시하던 불확실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신중론을 부추기는 것은 선진국부터 주춤하는 글로벌 경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최근 “지난해 4분기 이후 서유럽과 중국 미국 등의 성장세가 둔화됐다”고 진단했다. UC버클리, UCLA, 예일대 연구진은 지난해 무역전쟁 등에 따른 미국의 경제적 손실이 78억 달러라고 추산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양회를 마무리하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 위기를 이겨낼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결국 중국 경제가 새로운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미국 기준금리가 여전히 ‘중립금리’를 밑돈다는 지적도 많다. 중립금리란 경기 과열이나 후퇴 없이 잠재성장률을 달성할 만한 이상적인 금리 수준이다. 기준금리가 중립금리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은 인상의 여지가 있다는 의미로 통한다. 실제로 경제전문가들의 예상치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인하’나 ‘동결’보다 여전히 ‘1차례 인상’이다.

하지만 적어도 인상 시기만큼은 뒤로 밀릴 것으로 보인다.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언론 인터뷰에서 “경기 하방 위험의 확대를 고려하면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늦추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도 “물가상승률이 연준의 목표치인 2%대에 미달하는 한 기준금리 인상은 없다”고 했다.

한은은 통화정책 운용 과정에서 미국 등 주요 중앙은행의 정책을 비중 있게 고려한다. 일본과 유럽에 이어 미국에서도 통화정책 완화 분위기가 감지되면, 한은도 ‘선제적 인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한다. 지난달 말 이주열 한은 총재는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방향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며 시장 일각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에 선을 그었었다. 이번 FOMC 결과는 21일 오전 3시(한국시간)쯤 한국에 전해진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