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이슬람사원 총격 테러 사건의 후폭풍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 동맹국들의 테러 관련 정보 교환이 유명무실해졌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심화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어권 5개국인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다섯 개의 눈(Five Eyes)’으로 불리는 긴밀한 정보 수집·교환 동맹을 구축했다. ‘다섯 개의 눈’은 20년 넘게 테러 관련 정보를 유기적으로 교환하며 대테러 전선의 기둥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강력했던 5개국 정보 동맹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무기력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극우 극단주의자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국경을 넘어 정보를 교환하는데 5개국 정보 동맹은 이런 추세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번 뉴질랜드 총격 테러와 관련해 뉴질랜드 정보 당국은 국내 급진주의 인사와 단체들에 대해 의미 있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미국도 뉴질랜드 실정에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정보 교환의 동맥경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 관계를 과소평가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우월주의자의 위협을 경시하는 것도 극우 극단주의자들의 범행을 부추기는 요인이라는 비난이 제기된다.
미국과 동맹국들의 정보 방향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다. 이들은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무장세력의 정보를 정기적으로 교환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국경 안에서 안전을 위협하는 극단주의자들에게 더 많은 정보 역량을 투입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5개국 정보 동맹도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부상에 대해 논의하긴 했지만 초국가적인 조직의 위협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미국 싱크탱크 ‘뉴 아메리카’의 대테러전문가 PW 싱어는 “이슬람국가보다 진짜 테러리스트인 극우 극단주의자들이 더 많은 미국인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테러의 불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옮겨붙을 분위기다. 뉴질랜드 테러범이 범행 직전 인터넷에 올린 ‘반이민 선언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백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한 상징’이라고 치켜세운 것이 발단이 됐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뉴질랜드 참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레토릭(수사)과 관련이 없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우월주의자가 아니다”고 진화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뉴질랜드 테러와 관련해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아주아주 심각한 문제를 가진 소규모(small group)의 사람들”이라고 표현해 논란을 자초했다. 미국 내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극우 인종주의자들의 위협을 ‘소규모’로 바라보고 있다는 비난이다.
WP는 각국이 국내 과격세력들의 정보를 교환하는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백인 우월주의를 과소평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선 ‘다섯 개의 눈’의 정보 협력 수준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대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전직 미 정부 관리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뒷전으로 밀려난 국내 테러세력에 대한 대응을 정부의 최우선 임무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