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희한한 일이었다. 일본어 문장 한 줄이 전 국민적 유행어가 된 적이 있다. 영화 ‘러브레터’(1999)의 여주인공이 죽은 남자친구를 향해 외치던 안부 인사. “오겡끼데스까(잘 지내나요)?” 당시 이 대사를 한번쯤 따라 해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었다.
그만큼 일본 로맨스 영화의 인기가 대단한 시절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냉정과 열정 사이’(이상 2003)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5) 등 명작으로 회자되는 작품들이 여럿 나왔다. 한데, 최근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일본 영화에 대한 호응도가 전체적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특히나 로맨스 장르는 관객의 관심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최근 몇 년 새 여러 작품이 국내에 소개됐으나 주목할 만한 흥행을 기록한 사례는 없었다. 일본 로맨스물이 더 이상 한국에서 통하지 않게 된 이유는 무얼까.
봄날 극장가를 찾는 신작이 적지 않다. 지난 14일 공개된 ‘아사코’는 제71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첫사랑과 닮은 사람을 사랑하게 된 아사코 앞에 진짜 첫사랑이 돌아오며 생겨나는 감정의 파고를 그린다. 같은 날 개봉한 ‘철벽선생’은 학교를 배경으로 한 경쾌한 로맨스다.
21일 개봉하는 ‘양지의 그녀’도 첫사랑을 다루는데, 캐스팅이 화려하다. 그룹 아라시 출신으로 드라마 ‘고쿠센’ ‘꽃보다 남자’ 등을 통해 배우로서 입지를 다진 마츠모토 준과 ‘노다메 칸타빌레’의 우에노 주리가 호흡을 맞춘다.
그러나 이들 작품 역시 작품성과 별개로 화제성은 다소 떨어진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과거 수입 초기에는 일본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비슷한 멜로 영화만 들어오다 보니 우리 관객 입장에서는 식상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도 “대중은 콘텐츠에 민감한 소비자들이어서 이미 파악된 이야기엔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특히 멜로 장르는 대부분 서사 구조가 어느 정도 패턴화돼 있기 때문에 웬만큼 신선하지 않고는 관심을 받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일본 특유의 로맨스 감성이 국내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 평론가는 “일본 멜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절제하는 설정이 많은데 그게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한다”며 “그런 낯섦과 답답함이 우리 대중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