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민 ‘백색테러’ 지상천국 뉴질랜드까지 덮쳤다

입력 2019-03-18 04:02
뉴질랜드 시민들이 16일(현지시간) 남섬 최대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의 알 누르 이슬람사원 부근 추모 공간에서 백인우월주의자 브렌턴 태런트의 총격 테러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태런트가 15일 이슬람사원 두 곳에서 자행한 총격 테러로 50명이 숨지고 50명이 다쳤다. 전 세계는 역사상 최악의 무슬림 증오 범죄가 발생하자 큰 충격에 빠졌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명백한 테러범의 공격”이라고 규정했다. 테러범의 공격리스트에 있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우리는 뉴질랜드 국민들 곁에 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AP뉴시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총기 난사 사건은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반(反)이민주의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특히 2015년 유럽 난민 위기에서 촉발된 반이민 정서는 소셜미디어를 통로 삼아 세계 각국으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슬림 이민자를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행태는 다른 소수인종을 겨냥한 무차별 테러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뉴질랜드 정부는 이번 사건을 ‘반이민주의 테러’로 규정했다. 호주 국적의 테러범 브렌턴 태런트(28)는 15일 범행 전 트위터에 73쪽의 ‘반이민 선언문’에서 “유럽을 침략한 이민자들을 제거하고 그들에게 위협을 가해 이민율을 낮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백인의 땅은 결코 이민자의 땅이 될 수 없다”고도 했다.

태런트는 범행 직전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포함 30여명에게 선언문을 메일로 보냈다. 아던 총리는 메일을 받고 2분 안에 보안 당국에 전달했지만, 선언문에 범행 장소는 써 있지 않아 총격 참사를 막을 수 없었다. 뉴질랜드 사법당국은 이번 테러를 태런트의 단독 범행으로 판단하고, 그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시민들이 16일(현지시간) 아오테아광장에 모여 크라이스트처치 총격 테러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한 여성이 “테러는 승리하지 못한다(Terror will not win)”고 적힌 플래카드를 세워두고 있다. AP뉴시스

반이민 정서 또는 백인우월주의에서 기인한 테러나 테러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2017년 1월 캐나다 퀘벡시티의 이슬람사원에서는 극우 민족주의자가 총격을 가해 6명이 숨졌다. 캐나다는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하는 국가 중 하나다. 같은해 6월 영국 런던의 이슬람사원 인근에서는 백인 남성이 차량 돌진 테러를 일으켰다. 두 달 후 미국 미네소타의 이슬람사원에서는 테러용 폭탄이 발견됐다.

유럽의 대규모 난민 수용에서 싹튼 ‘이민자 혐오’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반이민 정서를 지닌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소통하면서 서로 극단적 사상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소셜미디어는 누군가에 대한 살의를 표현하는 공간으로 전락했다”며 “이러한 행태가 실제 범죄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이민 정서가 흑인과 유대인 등 소수인종에 대한 혐오로 번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알 누르, 린우드 사원 총격 테러 사망자 수는 50명으로 늘면서 ‘최악의 무슬림 증오 범죄’로 남게 됐다. 신원이 파악된 사망자 48명 중 44명은 남성, 4명이 여성이다. 사망자는 3살 어린아이부터 77살 노인까지 다양했다. 사망자들은 터키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등 무슬림 국가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4살 난 소말리아 출신 어린아이, 3살 난 아이도 총격을 입고 숨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태런트가 총기를 합법적으로 소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자 뉴질랜드 당국은 총기규제법 강화를 예고했다. 아던 총리는 “국민들은 (총기규제법의) 변화를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런트가 범행 당시 사용했던 페이스북의 라이브 스트리밍(실시간 녹화) 기능을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