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남자 만나면 죽어” 관악데이트살인 두달, 달라진 게 없다

입력 2019-03-17 19:30

지난 1월 6일 새벽 서울 관악구의 한 빌라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현장에서 발견된 직장인 신모(27·여)씨 시신에선 40번 이상 칼에 찔린 흔적이 보였다. 얼굴은 심하게 부어 있었다. 범행한 A씨(27)는 비명 소리가 들린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내가 죽였으니 잡아가라”며 현장에서 자수했다. 신씨와 A씨는 교제한 지 6개월째였다.

신씨 유족과 지인에 따르면 A씨는 평소 신씨 생활에 병적으로 간섭했다. “너는 내 손바닥 안에 있다”는 말도 했다. 연락이 잘 안 되면 “다른 남자 만나는 거면 너와 네 친구들 다 죽여버린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사건 당일도 A씨는 신씨의 SNS에 “아프다는 X이 남자랑 술처먹고 즐겁냐 X같은 X아”라고 욕설을 남겼다. 그러나 신씨도, 그런 말을 함께 들은 주변 친구들도 숱하게 들은 협박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신씨 지인들에 따르면 A씨는 평소에도 승용차 뒷좌석에 칼을 놓고 다니며 다른 운전자를 위협했다. 이 칼은 신씨를 살해하는 데 쓰였다. 그에게는 폭행 전과도 있었다. 신씨와 교제를 시작할 당시 결혼한 상태였고 자녀까지 있었지만 이를 끝까지 숨겼다. 본래 지난 8일이던 A씨의 재판날짜는 다음달 1일로 미뤄진 상태다. 신씨 유족들은 “A씨가 선고받을 형량이 적으면 향후 보복을 받을까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신씨 사건과 같은 ‘데이트폭력 살인’은 매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18건, 2017년 17건에 이어 지난해에도 16건이 발생했다. 데이트폭력 살인미수 사건 역시 지난해 26건이 발생했다. 2018년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1만8671건으로 2016년 9364건에 비해 2년 사이 배로 늘었다. 데이트폭력 범죄로 지난해 입건된 가해자는 1만245명으로 2년 연속 1만명을 넘었다.

그러나 데이트폭력 처벌 강화, 피해자 보호를 골자로 하는 법안은 수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2017년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이 잇따라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지난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위원회에서만 ‘지원’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 ‘처벌’ 부분을 규정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는 아예 안건으로조차 오르지 못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해 2월 직접 “법을 개정해서라도 가중처벌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게 무색할 지경이다. 국회 관계자는 “법안 논의를 위한 관련 공청회조차 아직 언제 개최할지 기약이 없다”면서 “양형 기준 등에 대한 논의가 더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