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노위는 ‘이슈 블랙홀’인가… ILO 협약마저 교착

입력 2019-03-18 04:02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갈림길에 섰다. ‘사회적 대화’의 파열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안 의결 불발에 이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도 ‘늪’에 빠졌다. 첨예한 노동 현안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경사노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자 정치권에선 ‘무용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경사노위의 논의·의결 구조를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의 공익위원들은 18일 기자간담회를 연다. 노사관계위는 한국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전에 협약과 상충하는 국내법 개정을 논의하는 위원회다. 지난해 11월 논의의 1단계로 해고자·실직자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는 내용의 공익위원 권고안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단체교섭과 쟁의행위를 다루는 2단계 논의부터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경사노위 관계자는 기자간담회에 대해 “현재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데, 이를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야 할지 공익위원들이 의견을 내는 자리”라고 17일 설명했다.

2단계 논의가 멈춰선 배경에는 공익위원 간의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월 경영계 추천 공익위원인 부산대 권혁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강원대 김희성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단계 논의와 관련한 권고안 초안을 제시했었다. 노조의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처벌 폐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 등 경영계 요구사항이 그대로 포함돼 있었다. 이 초안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일시적인 경사노위 대화 거부 등 노동계 반발을 불러왔다. 경영계 추천 공익위원 초안이 마치 합의안처럼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자 심적 부담을 느낀 권 교수는 사의를 표명한 뒤 지금까지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노동계 추천 공익위원들은 불법파업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을 안건으로 제시하며 응수했다. 경영계와 노동계가 서로 받아들이기 힘든 안을 내놓으면서 공익위원끼리도 접점을 찾을 수 없는 갈등에 빠진 것이다. 이에 따라 노사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공익위원안을 제시하는 데 그쳤던 1단계 논의보다 결론을 내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월까지 2단계 논의에서 결과물을 만들겠다던 시간표도 기약 없이 밀리고 있다.

경사노위는 애가 탄다. ILO 핵심협약 비준에서도 성과물을 내지 못하고 국회로 공을 넘기면 ‘경사노위 무용론’이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이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안 의결에 실패하면서 경사노위는 강한 압박에 직면해 있다.

지난 15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선 경사노위 본위원회 무산과 관련해 여야의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지금 방식은 본위원회에서 의결을 하지 못하면 합의가 아닌 게 된다. 사회적 대화를 막는 것”이라고 경사노위의 역할 변화를 주문했다. 자유한국당 임이자 의원은 의결구조 문제를 지적했다. 임 의원은 “노사정 위원이 각각 2분의 1 이상 출석해야 하는데, 결정을 안 하겠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임 의원이 언급한 규정은 과거 노사정위 시절에 노동계나 경영계의 일방적 의결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경사노위 출범 이후 노사를 대표하는 사회적 대화 주체가 다양해지면서 일부 대표자의 불참으로 의결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사노위 문성현 위원장은 “이 정도(의결 무산)까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충격적”이라며 “이번 계기로 경사노위 회의 운영을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