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애플 구하려고 공정위 압박하는 美 무역대표부

입력 2019-03-18 04:02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절차가 부당하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양자협의를 요청했다. 한국 공정위가 미국 기업들의 불공정행위를 조사할 때 방어권을 충분히 주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USTR은 전반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012년 한·미 FTA 발효 이후 USTR이 양자협의를 요청하기는 처음이다. 왜 USTR은 뜬금없이 양자협의를 요청했을까. 공정위 안팎에서는 이면에 ‘애플 구하기’ 전략이 도사리고 있다고 본다. ‘거래상 우월적 지위 남용행위’ 혐의를 받는 애플은 이달 말 공정위 3차 전원회의 심의를 받는다. 다음달쯤 제재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갑질 제재’가 임박하자 충분한 방어권 기회를 주라며 지원사격에 나선 것이다.

USTR은 현지시간 15일 “한국 공정위가 일부 심리에서 미국 이해당사자가 불리한 증거를 검토하고 반박할 기회를 주지 않는 등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 변호 능력을 저해했다”면서 한·미 FTA에 따른 양자협의를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한·미 FTA 협정문의 16장 1조 3항에는 경쟁법 위반 여부 판정을 위한 행정심리 때 피심인이 방어를 위한 증거를 제시하고 발언할 기회를 보장한다고 규정돼 있다.

한국 정부에선 미국 통상 당국의 갑작스러운 공식 항의에는 ‘제2의 퀄컴 사태’를 막자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본다. 공정위는 2016년 12월 퀄컴이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정상적 경쟁을 방해하고 특허권을 독식했다며 과징금 1조300억원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었다.

애플은 궁지에 몰려 있다. 공정위는 애플의 한국 법인인 애플코리아가 ‘갑’ 위치에서 ‘을’인 국내 이동통신사에 광고비, 제품 무상수리비용, 대리점 판매대 설치비용, 신제품 출시 홍보 행사비용 등을 떠넘겼다고 판단한다. 애플은 전 세계에서 관행적으로 이동통신사에 광고비를 떠넘기고 있다. 공정위는 2016년 애플 관련 의혹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각각 1, 2차 심의를 진행했다. 3차 심의는 이달 말 개최될 예정이다. 애플은 최대 1000억원대 과징금을 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에서의 과징금 액수는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 다만 한국 공정위가 거래상 우월적 지위 남용으로 결론내리면 비슷한 내용으로 다른 나라에서 제기된 소송에서 줄줄이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는 모든 조사를 한·미 FTA 규정에 맞게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2016년 5월 퀄컴의 의견서가 접수된 이후 약 5개월 동안 총 7차례 전원회의를 개최하는 등 퀄컴의 방어권을 보장하려 노력했었다. 퀄컴 때처럼 애플에도 충분한 방어권을 주고 있다. 3차 심의도 당초 지난달 열려고 했지만 방어권 보장 측면에서 이달 말로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협력해 미국 측과 성실히 협의할 방침이다. 한·미 FTA 협정문에는 협의를 요청하면 임해야 한다는 내용 외에 구체적 기한 등의 규정은 없다. 산업부 관계자는 “USTR과 실무협의를 통해 향후 일정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