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사원 총격 테러 현장에는 목숨을 걸고 테러범을 저지한 시민들이 있었다. 반자동 소총을 난사한 테러범에 맨몸으로 맞선 영웅들이 더 큰 피해를 막았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7일 보도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출신인 압둘 아지즈(48)는 15일 네 아들과 린우드 사원을 찾았다가 총기난사범 브렌턴 태런트와 맞닥뜨렸다. 아지즈는 마침 사원에 있던 신용카드 결제단말기를 태런트에게 던져 맞추고 몸을 피했다. 그는 총을 쏘던 태런트가 탄창을 가지러 차로 돌아간 틈을 타 바닥에 떨어진 총기 한 정을 주웠지만 빈총이었다. 그는 끝까지 뒤따라가 이번에는 빈 소총을 던졌다. 소총은 탄약이 실린 차 앞 유리창을 산산조각냈다. 태런트는 “죽여버리겠다”며 욕설을 퍼부었지만 결국 차를 몰고 달아났고, 얼마 안 돼 경찰에게 붙잡혔다. 아지즈는 NYT 인터뷰에서 “또 다른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줄 준비가 돼 있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출신의 대학교수 나임 라시드(50)는 아들과 함께 알 누르 사원을 찾았다가 테러를 당했다. 알 누르 사원은 태런트가 린우드 사원보다 먼저 잔혹한 범행을 했던 곳이다. 라시드는 기도실에서 사람들을 겨냥해 소총을 쏘던 태런트를 저지하기 위해 맨손으로 달려들었다가 총에 맞아 쓰러졌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라시드가 자랑스럽다. 우리는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모든 지원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알 누르 사원 인근 식물원 앞에 마련된 임시 추모소에는 꽃다발이나 촛불을 든 추모객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도 이슬람 여성처럼 검은색 스카프를 쓰고 크라이스트처치를 찾아 희생자 유가족과 이슬람 대표를 만났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슬람 세계와 뉴질랜드인에게 터키를 대표해 조의를 표한다”고 썼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우린 어려운 시간에 뉴질랜드인의 곁에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는 태런트가 범행 전 공개한 선언문에 제거 대상 정치인으로 지목됐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