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구원으로 인도하는’ 521장(통 253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7장 13~14절
말씀 :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려는 이유는 종교가 마음의 평화나 희망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힘겨운 삶을 버텨 내기 위한) 용기와 위로를 얻기 위해 나아오는 이들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독교 신앙이 오늘의 그 무엇을 견뎌내기 위한 것일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마음의 위로나 주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기독인으로 사는 삶은 오히려 ‘좁은(작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협착하여 찾는 이들이 거의 없는 길을 가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이 길을 가야 하는 이유는, 이 길이 생명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제가 군 복무 시절 공군 관제사로 높은 산 위에서 근무할 때 일입니다. 외출 시 장병들은 보통 오후에 하산하는 차량을 이용하곤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전 근무를 마친 후 3시간 반 이상의 거리를 걸어 내려오곤 했습니다.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습니다. 단화를 신고 포장이 안 된 길을 내려오는 일은 매우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길은 제게 기쁨과 만족의 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다 끝내면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만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 됨의 방식이 작은 문과 협착한 길을 가는 것임을 염두에 두라고 하십니다. 고생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여러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령 회사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이 나를 밀어내고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나를 중상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성도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매우 제한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스데반처럼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본능에 비춰 볼 때 그 길은 실로 좁고 불편한 길입니다. 더구나 상황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길이라고 하지 않으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지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권리와 욕구에 대해 간섭하실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 이 같은 하나님의 권리 주장에 승복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릇된 것을 원하는 내 본능을 포기하는 것이며, 선한 일을 해도 수혜자를 고려해 생색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론만 능한 이상주의자이거나 마음에 내키는 데까지 순종하려는 현실론자도 아닙니다. 제자란 느끼는 것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 것을 행하는 적극적 실천 주의자들입니다.
분명히 이 길은 결코 우리에게 자연스럽지 않기에 ‘찾아야만 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안과 기쁨, 소망으로 이 길을 갑니다. 우리를 생명으로 이끌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기쁨과 소망 가운데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을 찾아 나서는 우리 모두 되기를 구합니다.
기도 :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성부께서는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아들을 주시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 고난이라는 좁은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에 앞선 믿음의 선진들 역시, 좁은 길을 택해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었습니다. 주님, 저희에게도 그들이 지녔던 소망을 주셔서 인애와 섬김, 용서라는 좁은 길을 기쁨으로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희승 목사(파주 하늘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