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한국갤럽에 의뢰해 10년 전인 2009년 7월 전국 13세 이상 남녀 1727명을 상대로 이런 설문을 진행했다. “국내 라디오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은 무엇인가.” 당시 조사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이하 별밤)는 강력한 경쟁작인 ‘여성시대’ ‘싱글벙글쇼’ ‘두시의 데이트’ 같은 프로그램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당시 별밤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61.2%로 집계됐다.
실제로 별밤은 한국 라디오 방송 역사에 가장 선명하게 새겨진 프로그램이다. 별밤 DJ를 일컫는 ‘별밤지기’는 한때 “밤의 교육부장관”으로 불릴 만큼 10대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많은 한국인은 이 방송을 들으며 추억을 나누고 위로를 받고 즐거움을 공유했다.
그리고 별밤은 올해 방송 50주년을 맞았다. 17일 MBC에 따르면 별밤이 처음 전파를 탄 건 이날로부터 딱 50년 전인 1969년 3월 17일이었다. 당시 프로그램의 성격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명사들을 초대해 대화를 나누는 게 방송의 얼개였다. 하지만 3대 별밤지기인 이종환이 마이크를 잡으면서 별밤은 음악 프로그램으로 변신했고 10대들의 사랑방으로 자리매김했다.
MBC 표준FM을 통해 매일 밤 10시5분부터 자정까지 방송되는 별밤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갖가지 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방송을 거쳐 간 PD는 100명이 넘는다. DJ는 현 진행자인 가수 산들을 포함해 총 26명에 달한다. 김기덕 이수만 이적 옥주현 박경림 허경환 강타 등 별밤지기 ‘족보’를 살펴보면 별처럼 빛나는 스타들의 이름을 만나게 된다.
특히 이문세가 진행을 맡은 85년부터 96년까지는 별밤의 전성기였다. 별밤을 듣지 않으면 친구들과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10대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청취자들과 함께하는 ‘별밤 여름캠프’,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이 한 무대에 섰던 ‘별밤 잼 콘서트’, 최고 인기 코너였던 ‘별밤 창작극장’ 등은 지금도 회자된다. 이문세는 마이크를 내려놓기 전인 96년 11월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열렬히 연애하는 기분으로 별밤을 진행했다”고 말한 바 있다.
MBC는 별밤 50주년을 기념해 이색적인 프로젝트를 선보이기로 했다. 프로젝트의 제목은 ‘1320㎞ 프로젝트: 별밤로드 끝까지 간다’. 17일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8일에 걸쳐 전국을 순회하며 열리는 야외 생방송이다. 별밤 제작진과 출연자들은 이동식 스튜디오인 ‘알라딘’을 타고 대전 전주 광주 부산 대구 춘천 등지를 찾아간다. 역대 별밤지기 상당수가 이 투어에 참가한다. 특히 프로젝트 마지막 날인 24일엔 별밤의 상징인 이문세가 출연할 예정이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MBC 사옥에서 만난 신성훈 PD는 “별밤은 MBC 라디오의 상징과도 같은 프로그램”이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청취자들을 직접 찾아가 ‘50년간 별밤이 당신 곁에 있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DJ 산들은 “50주년을 맞은 시점에 별밤지기를 맡고 있다는 게 영광스럽다. 오랫동안 별밤지기로 활동하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유튜브나 팟캐스트 같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서 라디오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다. 특히 10대를 타깃으로 하는 별밤의 경우 과거에 비해 화제성이나 청취율이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제작진 역시 이런 현실을 모를 리 없다. 신 PD는 “10대들이 라디오를 과거처럼 즐겨듣지 않는 상황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이라는 포맷을 계속 고수해야 하는지 고민한 적도 있었다”며 “하지만 청소년을 향한 프로그램이라는 별밤의 정체성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모든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연말쯤에는 청취자들로부터 ‘좋은 추억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청취자의 삶 속으로 다시 깊숙하게 들어가는, 그런 별밤을 만드는 게 저희들의 목표입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