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때문에 미쳐, 손님도 안 오고.”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졌던 지난 7일 서울 회현 남대문시장. 점심께부터 농도가 옅어졌다지만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손님과 상인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콜록. 콜록.’ 노(老) 상인들의 기침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꽁꽁 얼어붙은 경기에 미세먼지가 몰고 온 이 같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시장 전체에 그늘을 드리우는 듯했다.
평소 활기를 띠던 남대문 시장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연일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고 있는 터다. 일부 가게는 아예 문을 열지 않았다. 그나마 오늘은 나아진 편이다. 미세먼지가 절정이던 어제께는 다수의 상인들이 아예 장사를 쉴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탓일까 가게마다 비닐을 이용해 미세먼지 막아보려 애썼던 흔적도 눈에 띄었다.
빈대떡을 팔고 있는 상인 김모씨는 “눈과 비는 피해도 미세먼지는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 “10년 동안 장사해오면서 먼지가 장사에 영향을 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를 듣던 한 손님은 “국민들이 미세먼지로 고통 받고 있는데 정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쓴소리를 했다.
상인들은 하나같이 미세먼지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형마트의 상권 침해 문제도 꾸준히 제기됐지만 최근에는 미세먼지가 특히 걱정이라는 것이다. 시장에서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성모씨는 “장사도 어려운 상황에 미세먼지까지 몰려와 상인들은 정말 죽을 맛”이라며 “이대로 가다간 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더욱 줄지 않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통시장은 특성상 외부에 있거나 개방된 공간이기 때문에 미세먼지의 직격타를 받는다. 먼지가 심한 날은 상품을 외부에 진열하기도 힘들다. 특히 생선과 야채를 취급하는 점포의 피해는 훨씬 심각하다. 30년 동안 남대문에서 장사를 해왔다는 진모씨는 “밖에 내놓은 생물을 신경 쓰느라 힘이 많이 든다”면서 “전에는 도로에 물도 뿌려주고 했는데 이번엔 그런 조치도 없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라며 얼굴을 붉혔다.
이처럼 미세먼지 대란에 공기청정기 등 환기시설이 있는 실내로 발길을 돌리는 손님은 계속 늘고만 있다. 이와 관련 롯데백화점 측은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가 시행됐던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전국의 백화점, 아웃렛 등 58개 점포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1% 늘었다고 밝혔다. 구매 고객 수는 이보다 많은 18.8%나 증가했다.
시대가 바뀌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전통시장도 변화의 길목에 서있긴 마찬가지다. 여기에 상인들은 미세먼지를 무슨 수로 또 막아야 할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전통시장에서 장사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노(老) 상인들의 건강도 우려스런 대목이다. 상인들은 종일 밖에서 ‘미세먼지’를 마셔야 한다. 열린 공간이라는 특성상 공기청정기와 에어컨 등 어떤 환기시설의 도움도 없다. 근본적인 미세먼지가 차단이 없다면 어떤 정부 정책도 소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살 만큼 살았다”며 마스크는 필요 없다고 웃음을 짓던 전통시장 상인들은 그야말로 미세먼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한전진 쿠키뉴스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