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더차별받은 일본 마이너리티 여성들의 인생 이야기

입력 2019-03-16 04:03
미리내 회원 정미유기씨 어머니의 1946년 가족사진. 재일조선인에게 가족사진은 고국의 가족에게 소식을 전하는 절실한 수단이었다.사계절 제공

출신 때문에 핍박받고, 여자라서 더 차별받은 이들의 에세이. 일본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온 재일조선인, 피차별부락, 아이누, 오키나와, 베트남, 필리핀 출신의 20대부터 70대 여성 22명이 자신의 가족사진을 바탕으로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재일조선인 1세인 아버지와 2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황보강자(62)씨는 어릴 때 자신의 출신을 숨겼다. ‘강자’라는 자기 이름 대신 ‘야스코’라는 일본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조선인을 멸시하는 일본인들의 시선이 싫었기 때문이다. 황보씨는 일본인 행세를 했고 어머니의 기모노 차림 사진을 자랑스러워하며 자랐다. 하지만 중학교에 다니던 무렵 지문 날인과 외국인 등록증을 상시 휴대해야 하는 제도를 경험하면서 ‘완전한 일본인이 되겠다’는 꿈을 접었다. 이때 일본 당국이 조선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것에 분개했고 민족적 자각을 하게 됐다. 황보씨는 “오랜 세대를 거쳐 수십 년간 살아왔어도 일본은 우리에게 아직도 안주할 땅이 못 된다. 태어나자마자 배척당하는 공통항이 자이니치(在日) 1세부터 5세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탄한다.


재일조선인의 집에는 궁핍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두툼한 사진첩이 있다. 생이별한 조선의 가족과 연락할 수 있는 길은 편지였고, 편지에는 가족사진을 동봉했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 3세 정미유기(60)씨도 가족사진을 많이 찍었다. 정씨의 어머니는 “삶에 낙이랄 게 없었으니까 돈을 모아서 사진 찍으러 가는 게 재미”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딸에게 “공부에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장녀라는 이유로 가족을 위해 일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버지는 종갓집 장남이었다. 여자들이 음식 준비를 하고 남자들은 먹기만 하는 제사 문화가 답습됐다. 정씨는 조선식 의례에 진절머리가 났고 중학생 무렵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단다.

책에는 출신과 성(性)이라는 이중적 차별에 놓인 할머니 어머니 딸 그리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타국에서 여전히 차별받는 우리 민족, 이 땅에서 차별받는 다문화가정 여성들을 돌아보게 한다. 저자이자 엮은이인 ‘미리내’는 재일조선인 여성들의 모임이다. 전신은 1991년 발족된 ‘조선인종군위안부문제를생각하는모임’이다.강주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