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앞둔 직장인 이모(37)씨는 최근 시중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남편에게 집 계약금을 보냈다. 거래 내역에서 남편 계좌를 고르고 금액을 입력한 뒤 ‘송금’ 버튼을 누르자 바로 돈이 빠져나갔다. 공인인증서나 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는 필요 없었다. 이씨는 “예전에는 은행 앱으로 돈을 보내려면 OTP나 보안카드가 필요해서 ‘토스’ 같은 간편송금 앱을 쓰곤 했다”며 “이제는 은행 앱에도 간편송금이나 빠른이체 기능이 생겨서 편리하다”고 말했다.
‘디지털 퍼스트’를 외치는 은행들이 핀테크 업체와 인터넷전문은행의 서비스를 빠르게 모방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뒤처진다는 비판을 받던 은행들이 선택한 전략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다. 새로운 기술·서비스를 발 빠르게 차용하는 것이다. 공인인증서가 필요 없는 간편송금이나 QR코드(격자무늬 바코드)를 이용한 간편결제 기능은 이미 대다수 은행 앱에 탑재됐다. 비대면 대출, 데이터 분석·자산관리 등 금융 혁신으로 평가받던 서비스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13일 “고객 편의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기술과 서비스를 동일하게 구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은 최근 인터넷·모바일뱅킹의 대출 프로세스를 완전히 뜯어고쳤다. 비대면 전용 신용대출·전월세보증금 대출 상품을 내놓고 ‘무서류·무방문’을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고객이 내야 하는 서류 가운데 은행이 금융회사나 공공기관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우 ‘스크린 스크래핑’ 기술을 이용해 자동으로 수집된다. 부동산 계약서나 거래 영수증 등은 고객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은 뒤 앱에 입력하면 된다. 인터넷은행의 비대면 대출 과정과 동일하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고객의 거래 편의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모바일 앱 쏠(SOL)에 각종 금융 서비스를 모두 담았다. 부동산 정보를 제공하는 ‘쏠 랜드’를 비롯해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쏠 리치’, 간편 계좌결제 플랫폼 ‘쏠 페이’ 등 다양한 기능을 적용했다. 최근에는 국내 금융권 최초로 ‘시선추적 기술’을 적용해 화면 터치 없이도 눈의 움직임 만으로 조작이 가능한 자동입출금기(ATM)를 개발하기도 했다.
은행들의 변신은 인터넷은행과 핀테크 기업들이 촉발한 ‘메기 효과’가 크다는 분석이다. 간편 송금, 자산관리 플랫폼 업체들이 급성장하면서 기존 은행권의 디지털 서비스는 한 수 아래라는 인식이 굳어졌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은행들이 앞다퉈 서비스 따라잡기에 나서며 ‘상승 효과’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은 ‘패스트 팔로어’ 입장이지만 수년 내 새로운 서비스를 개척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국내 은행권만이 아니다. 핀테크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보수적인 일본 대형 은행들도 변화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계좌를 열거나 돈을 찾을 때 ‘도장’을 요구하던 관행을 없애고,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활용하고 있다. 이휘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전 세계적으로 모바일 뱅킹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새로운 서비스가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며 “금융회사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맞춘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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