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지도를 살피며 충북 증평의 한 콩밭을 걸어가다가 가슴이 내려앉을 뻔했다. 저자의 눈앞에는 사진에 담긴 것처럼 사람의 그것과 너무 흡사한, 돼지의 얼굴뼈가 드러나 있었다. 자세히 살피니 눈에 띄는 뼛조각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콩밭에 돼지의 뼈가 널려 있었던 건 이곳에 몇 년 전 전염병 탓에 살처분된 돼지들을 매장했기 때문이다.
농부는 죽은 돼지가 땅을 비옥하게 만들 수도 있을 거라고 여겼지만 밭에서는 콩이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돼지 사체가 밭의 질소 함량을 끌어올린 탓이다. 땅은 콩을 길러낼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알려졌다시피 국내에서는 2010년 이후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같은 전염병 탓에 많은 동물이 비명에 목숨을 잃었다. 이들 동물을 묻은 살처분 매몰지는 무려 4799곳. 사진작가인 저자는 지난 2년간 이들 매몰지 가운데 100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지금의 살처분 방식이 합당한지 묻는 글을 보태 책을 펴냈다. 매몰지 중에는 죽음의 땅으로 변한 곳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 누구나 인간이 만든 서늘한 살풍경을 마주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저자가 적어내려간 다음과 같은 대목이 대표적이다.
“매몰한 지 4년이 지났으니 대지가 회복 중일까.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머리카락이 백발로 변해버린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며칠 사이에 비닐 아래의 풀들은 새하얗고 투명하게 말라죽어버렸다. 아직 여기 동물이 있다. 대지는 삼킨 죽음을 토해내고 싶어한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