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가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타인에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한 수’ 알려주는 책이 차고도 넘친다. 신간 ‘마음의 상처와 마주한 나에게’가 이런 책 사이에서 눈에 띈 이유는 한 가지다. 스스로 자기 마음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셀프 테라피(self therapy)’ 심리와 기술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는 것이다.
허다한 책이 피상적인 조언이나 주관적 처세술을 알려주는 데 비해 이 책은 상처를 직시하고 이 고통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실질적 방법을 안내한다. 저자는 ‘나는 단호해지기로 결심했다’로 잘 알려진 독일 관계심리학자 롤프 젤린이다. 저자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매일 크고 작은 상처를 경험한다. 자기 상처를 돌아보지 않고 외면하는 것을 반복하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치명적으로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마음의 상처를 마주하고 들여다보라고 한다. 이 상처를 마음속 상처로만 두지 말고 성장의 계기로 만들라고 권한다.
그는 먼저 인간관계에서 거리 조절을 강조한다. 이런 얘기가 나온다. 집이 없는 고슴도치는 겨울 동안 땅속 구덩이에 몸을 숨기며 지낸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지내던 중 이런 생각을 한다. ‘모두 바짝 붙어서 서로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면서 겨울을 나면 어떨까.’ 하지만 고슴도치가 서로 몸을 가까이하는 순간 서로의 몸을 아프게 한다.
타인과 너무 멀면 외로움을 느끼고 반대로 너무 가까우면 피로감을 느끼는 것에 대한 우화다. 각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이 거리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저자는 타인에게 마음을 완전히 닫았을 때와 완전히 열었을 때를 가정하고 사람마다 마음을 여는 정도를 달리하라고 한다. 사람마다 마음을 여는 정도에 따른 편안함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친밀한 친구 A에게 부친의 부고를 전하지 않는다면 내 마음도 편하지 않고,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친구도 섭섭해할 것이다. 반대로 가깝지 않은 직장 동료 B에게 이 소식을 전하는 건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자기 상처를 치유하려면 잘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정신적 상처를 받을 때도 우리 몸은 반응한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 심장이 찔린 듯 아픈 느낌, 가슴이 돌처럼 단단하게 굳는 느낌 등이다. 이런 느낌이 올 때 반응해야 한다.
업무 보고 중 상사로부터 “그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군”이란 말을 들었다 치자. 내가 열심히 노력했다면 그 말은 큰 상처로 다가온다. 이때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입니까”라고 되물어야 한다. 만약 그게 도발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 두렵다면 자기 위치에서 조금 옆으로 비껴 상황을 다시 생각해본다. 먼 산을 보는 것도 괜찮다. “자네 머리는 장식인가”처럼 충격적인 말을 들었을 땐 가슴이 두근거릴 것이다. 가슴 위에 손을 얹어 의식적으로 자신의 편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저자는 격렬한 논쟁이 더 큰 상처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큰 상처를 받았을 때 성급한 대화는 피하라고 조언한다.
자기 치료 수업은 뒤로 갈수록 단계가 높아진다. ‘플라톤 주유소’를 이용하는 방법은 상처 입은 가치를 바라본 뒤 다시 그 가치를 채우는 고난도 치료법이다. 오빠에게 “우리 가족 중엔 너 같은 멍청이는 없어”라는 말을 들었다면 여기에서 훼손된 가치는 가족으로부터의 인정과 사랑, 소속감이다. 중립적인 위치에서 상황을 바라본 뒤 회복하길 원하는 가치를 나에게 보상해야 한다. “넌 가족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양팔로 자신을 안아준다. 이 방법은 학문적으로 검증된 건 아니지만 저자의 심리치료실에서 경험적으로 확인된 것들이다.
“정신적 상처는 언제 어디서든지 입을 수 있다.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동시에 더 많은 인간성을 실현하고 우리가 상황의 힘에 굴복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자기 치료에서 나아가 상처 준 이를 용서하는 법까지 알려준다.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실용서다. 실질적인 자기 치유 방법을 실천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듯하다. 하지만 저자가 알려준 처방을 따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누구에게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