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피고인 신분이 된 법관들이 법정 안팎에서 적극적으로 입을 열고 있다. 포토라인과 검찰 조사실에서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말을 아꼈지만 ‘친정’인 법정에서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방어권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줄곧 묵비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다 138일 만인 지난 11일 열린 첫 재판에서 3000자가 넘는 분량의 발언을 쏟아내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또 핵심 문건이 발견된 임 전 차장의 USB를 검찰이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위법성이 있었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검찰에 첫 소환된 지난 1월 대법원 청사 앞에서 공식 입장을 전하고는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곧바로 조사실로 올라갔다. 영장심사를 받을 때도 입을 굳게 다문 채 취재진을 지나쳐 법정으로 향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태도는 달랐다. 지난달 26일 열린 보석 심문 기일에서 그는 13분간 검찰 수사관행의 문제를 지적했다.
대법원 문건 반출 혐의로 지난 5일 기소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도 페이스북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며 소회를 밝혔다. 영장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신광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지난 8일 기자단에 공식 입장문을 전달했다. 그는 “영장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며 “사법행정업무 처리 관행에 따라 내부에 보고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법관 피고인들의 태도가 달라진 배경을 두고 법조계는 “이미 피고인이 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피고인 신분이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함구하는 것이 안전했지만 피고인이 된 이상 최대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수사과정에서는 검찰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 검찰을 공격할 수 없다”며 “기소가 결정된 이상 아무도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없으니 방어권을 적극 행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호미자루’ ‘검찰발 미세먼지’ 등 인상적 표현을 쓴 배경에 대해서도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언론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자신이 범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호소하기 위해 정제된 표현보다 인상에 남을 만한 표현을 고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검찰을 흔들려는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수사 단계에서는 최대한 패를 숨기다 공개된 법정에서 방어 전략을 전면적으로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범죄사실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피의자가 자신의 방어 전략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며 “재판 과정에서 추가 진술이나 증거가 나오게 되면 검찰의 전략에 균열에 생기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법관은 “포토라인 등에서는 부정적 여론이 압도적이어서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재판부가 자신의 주장을 더욱 잘 이해할 것이라는 심리도 작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