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예수 영광 버리사’ 451장(통 50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7장 1~5절
말씀 : 만일 누군가 명백한 잘못을 했다면 그의 잘못을 깨우쳐 줘야 합니다. 상대가 그 잘못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위태해지고, 명예가 손상되며, 애써 모은 어떤 것을 상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깨우침을 위해선 상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기 위해선 그의 티를 정확하게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때의 평가가 비판이 되지 않도록 하라고 하십니다.(1절) 잘못을 찾아내는 검열관적인 비판은 결코 상대를 유익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긍휼 없는 비판은 오히려 상대를 화나게 하고 낙심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비난일 뿐입니다. 상대를 평가하는 목적은 분명 티를 빼내어 상대가 밝히 보도록 돕는 것이어야 합니다.
검열관적인 비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3절) 먼저 자기 눈 안의 대들보를 인식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들보는 집을 지을 때 사용하는 큰 재목을 말하고, 티끌(speck)이란 목수들이 대패나 정으로 깎아낼 때 생기는 조그만 나뭇조각을 말합니다. 만일 타인의 눈에 티끌이 들어갔다면 밝히 볼 수 있는 눈을 지닌 사람이 빼줘야 합니다. 자신의 눈 안에 들보가 있는 채로 상대의 눈에 있는 티끌을 꺼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위험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먼저 “자신의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말씀하십니다.(5절) 티끌, 곧 자신의 죄와 허물을 맞서 싸우는 사람만이 건강한 비평으로 상대를 바로 이끌 수 있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우리는 실상 조언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남을 더 비난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섬김이 풍성하고 자비가 넘치는 사람이 남의 잘못을 비난하는 것을 보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히려 헌신하지 않고, 협조하지 않는 인색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약함을 지적하기를 즐거워할 뿐입니다. 혹시 우리의 입술이 누구를 비난하게 되면, 그것은 오히려 내가 깨우침을 받아야 한다는 증거일 수 있음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서 오는 쾌감을 즐기는 것은 경건일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누군가에 대해 검열관적 판단을 한 것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긍휼 없는 판단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께서 경고하십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다.”(2절)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두 번째의 판단은 훗날 심판의 보좌 앞에서 당할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다른 이를 판단할 때 사용한 기준으로 우리도 판단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약을 주어 상대를 낫고자 하는 사람일 뿐 말로도 때리는 사람일 수 없습니다. 남 유다의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보이신 반응은 주야의 눈물이었습니다.(렘 14:17) 다른 이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권면하길 원한다면 그에게 사랑의 눈물이 선행돼야 합니다. 그럴 때 그것이 지적이 아닌 권면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타인의 잘못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훗날 심판과 닿아 있다는 주님의 가르침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 허다한 죄악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부르셔서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죄의 오염 가운데 넘어지지만 또 일으켜 주셔서 거룩한 길을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용서받았고 또 용서받을 자녀들같이 다른 이의 잘못을 대하게 하옵소서. 다른 이의 죄와 잘못을 비난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그가 죄악 가운데 고통받지 않도록 곁에서 돕는 자로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희승 목사 (파주 하늘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