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배달 음식은 조선시대 ‘냉면’… 임금·양반도 시켜 먹어

입력 2019-03-16 04:03

서울 광진구에 살고 있는 직장인 김모(31)씨는 6개월 전부터 1주일에 3, 4번은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퇴근 후 저녁상 차리는 일이 힘에 부쳐 한두 번 시켜 먹어봤는데 음식 맛도 좋고 가짓수도 다양해 이제는 배달음식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다. 요즘은 다이어트를 하는 탓에 샐러드를 주로 배달해 먹는다. 김씨는 15일 “샐러드까지 배달해 준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며 “삼겹살 1인분은 물론 유명 맛집 음식을 줄 서지 않고 먹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배달의 왕국

배달 안 되는 음식과 장소가 드물고, 밤늦게라도 전화 한 통 또는 클릭 한 번이면 갓 조리한 음식이 집 앞까지 오는 배달의 왕국 한국. 마라도 바다에서 “짜장면 시키신 분”을 외치는 한 통신사 광고가 한때 전 국민 사이에서 유행할 정도로 우리는 배달에 열광한다.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말 중 하나인 배달(倍達)이 사실은 배달(配達·물건을 가져다가 나누어 돌림)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치킨과 피자, 짜장면, 족발은 물론 광어회 등을 실은 배달 오토바이가 대로와 골목길을 쉴 새 없이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어떤 음식을 배달해 먹었을까.

임금과 양반도 배달해 먹던 냉면

기록을 통해 확인 가능한 최초의 배달음식은 냉면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황윤석은 1768년 7월 7일 자신의 일기 ‘이재난고’에 “과거시험을 본 다음 날 점심에 일행과 함께 평양냉면을 시켜 먹었다”고 적었다. 조금 더 살펴보자. 조선말기 문신 이유원은 관직에 있으면서 틈틈이 작성한 수록류인 ‘임하필기’에 11살에 임금 자리에 앉은 순조가 즉위 초 군직과 선전관을 불러 달구경을 하던 중 “냉면을 사 오라고 시켰다”고 기록했다. 이를 통해 최소 18세기부터 임금과 양반 등 상류층 사이에서 냉면을 시켜 먹는 문화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냉면에서 짜장면·짬뽕으로


냉면 배달은 1900년대 초 자전거 보급 확대로 전성기를 맞는다. 한 사람이 여러 그릇의 냉면을 걷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배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백현석·최혜림의 저서 ‘냉면열전’을 보면 서울 종로구의 한 냉면집 배달부가 인근 양복집으로 냉면 81그릇을 배달했다고 한다. 당시 규모가 큰 냉면집의 경우 배달부만 15명을 뒀다고 한다.

하지만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냉면 배달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미국이 밀 원조를 시작하면서 밀가루를 이용해 만드는 짜장면과 짬뽕 등이 대중적인 음식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백현석·최혜림은 “60년대 이후에는 배달시켜 먹는 음식이 주로 짜장면과 짬뽕으로 바뀌면서 불기 쉬운 냉면 배달은 점점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아파트, 인터넷, 스마트폰

70, 80년대 아파트 건설 붐, 90년대 인터넷망 조성, 2000년대 스마트폰 보급이 차례로 이어지며 오늘의 배달음식 문화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수의 사람이 한정된 공간에서 밀집해 살게 됐고, 정보처리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인터넷을 통해 크게 낮아지면서 음식을 시켜 먹는 사람에게도 배달하는 이에게도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서울과 수도권 등을 중심으로 집적화된 도시환경이 배달앱 등을 이용하는 배달문화 확산에 기여했다”며 “여기에 정보처리 비용도 인터넷을 통해 획기적으로 낮아지면서 현재의 배달문화가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배달앱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고 있는 ‘우아한형제들’의 류진 홍보이사는 “비대면 서비스를 선호하는 밀레니얼세대의 등장도 현재 배달문화 구축에 한몫했다”고 덧붙였다.

20조원 시장을 잡아라

국내 배달음식 시장의 미래는 밝다. 업계는 현재 국내 배달음식 시장 규모를 20조원 정도로 보고 있다. 이 중 배달앱을 통한 음식 거래만 해도 현재 6조~7조원이며 이 역시 향후 10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배달의 민족을 통한 거래액만 5조원을 넘어섰다.

또 배달음식에 대한 선호가 높은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 수가 매년 늘면서 관련 시장 성장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는 2000년 222만 가구에서 2015년 520만 가구로 급증했다. 통계청은 2045년에는 1인 가구가 809만 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류 홍보이사는 “1인 가구와 맞벌이 부부 증가, 온라인·모바일 편의성 증대 등으로 배달앱 시장은 더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달업계도 진화를 거듭하며 관련 수요 잡기에 분주하다. 짜장면과 짬뽕, 치킨을 배달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공유주방을 통해 유명 맛집들에 조리공간을 제공하고 이들이 직접 조리한 음식을 배달하거나 직접 프리미엄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배달의 민족은 2016년 서울 강남구와 강서구 등에 공유주방인 ‘배민 키친’을 선보였고, 배달앱 ‘요기요’를 운영하는 ‘딜리버리히어로 코리아’는 지난해 삼겹살 등 육류 구이 메뉴를 배달하는 ‘직화반상 by 셰플리’를 내놨다.

플라스틱과 비닐 등 재활용 쓰레기

플라스틱과 비닐 등 배달음식을 먹고 난 뒤 발생하는 재활용 쓰레기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다. 현재로서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재활용 쓰레기가 배달음식을 통해 나오는지 알기조차 어렵다. 배달음식을 담는 데 사용되는 일회용품의 경우 규제에서 제외되는 탓에 관련 통계가 없어서다. 환경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안에 관련 규제 로드맵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최근 배달음식 관련 일회용품 사용이 증가해 관리의 필요성을 느낀다”며 “현재 비규제 업종 및 품목 등에 대한 소비자 인식 조사와 환경에 끼치는 영향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7년 전국에서 배출된 플라스틱 쓰레기는 297만9898t이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